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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라는 개념이 인간의 종교문화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데 걸림돌인 이유

 ※이 글은 얼룩소 글(23.3.11)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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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문화·제도적 실체로서 물질적 형태로 확인되는 것들, 경전, 신전, 상징물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라는 것이 사람들이 상상해서 만든 문화적 관념을 다수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뭔가 실체가 있다'고 여겨진다는 점을 놓치게 됩니다. 유발 하라리는 이를 멋들어지게 '상호주관적 실재(inter-subjective reality)'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https://www.andyhinesight.com/the-future-and-reality/

종교라는 대상은 우리가 그 존재를 동의하기 때문에 실재성을 얻는 그런 개념입니다. 물론 그런 개념을 낳은 '물질적 현상', 객관적 실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걸 포착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이 개념의 한계를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 religion이든 번역된 말 '종교(宗敎)'든지, 어떤 자연적 현상을 지칭하지 않고, 사람들이 모여서 벌이는 행위나 공유하거나 퍼져있는 관념을 일컬어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문화적 편견의 산물이라고 거칠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종교', religion, 그 어원으로 여겨지는 라틴어 religio의 의미 변화 과정만 살펴보아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그런 개념의 초기 버전을 찾아가면, 만국 공통의 종교적 관념과 행동 방식을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무언가 인간에게 좋지 않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초자연적 존재의 힘을 빌리는 모종의 행위를 일컫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감각, 인식에서 하나의 물질적 현상[생리-화학적, 진화생물학적 기제]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의 맥락에서 그것은 '교(敎)'라기보다는 '예(禮)'로 시야를 돌려야 확인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예'는 신에 대한 제사를 형상화한 글자입니다(참고). '교(敎)'는 명백히 '가르침'을 칭하고 '가르치는 사람'과 '가르치는 내용(경전/텍스트)'을 전제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서구의 religion 개념과는 약간 결이 다릅니다.

서구 학계에서 종교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시도할 때, 종종 기독교 신도들이나 불교도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합니다. 인간의 종교적 행동이 어떤 식으로 개념화되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누구나 이건 종교 행동'이라고 여기는 것을 그냥 실험실로 가져와서 들여다 보는 식입니다. 그래서 신뢰할 수 없는 결과가 많이 나옵니다. 귀신 같은 존재를 인간이 어떻게 감지하는지, 유체이탈이 실제로 일어나는지 그런 걸 과학적으로 규명하려고 달려듭니다. 상상된 이야기를 가지고 실체를 찾으려 하니 답이 나오지 않지요.

그나마 뇌의 효과로 규명하려는 건 말이 됩니다. (물론 이렇게 접근해도 체험자는 사후세계의 존재나 영적 존재의 경험이 너무 현실감이 있는 것이라 '뇌가 폭발적으로 활성화된 효과'라는 식의 설명을 잘 납득하긴 어렵겠지요) 다만 연구 목표가 '사후세계, 임사체험, 그런 건 다 거짓말이다'가 된다면 초라한 시도가 될 뿐이긴 합니다(틀린 말은 아니지만요). 누군가의 희망, 의미 있는 체험을 짓뭉게는 용도밖에 안 되니 말입니다. 그런 연구가 인간의 종교적 체험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는 방향으로 활용되는 게 맞겠지요. (사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그런 경험을 인간의 필요에 맞게 사용하는 방법을 고민해 볼 수도 있습니다. 뇌를 적절히 자극해서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가령 마음의 위로, 심리적 안정과 평화의 감각 같은 것이요)
https://www.mk.co.kr/news/it/8213678

반면 종교 같은 것을 실재로서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종교적 행동과 관념(예를 들어 초자연적 존재는 말을 할 수 있고, 감정도 있고,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는 존재라는 생각 같은)을 과학적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도 있고, 그런 관점의 이론틀이 점차 인간의 종교문화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곳을 통해서 그런 연구 흐름의 일단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계속 풀어나가기에 앞서서, '종교'가 어떤 문화적 개념인지, 특히 종교문화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작업을 할 때, 이 말을 기준으로 현실을 재단하면 결국 동어반복이거나 문화적 편견을 재현하는 꼴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종교'라는 개념의 착각을 짚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religion의 어원 탐색

  • '종교'라는 번역어('종+교'가 아닌)의 확산

'종교'라는 말의 역사를 보면요, 우리가 쓰는 ‘종교(宗敎)’는 ‘religion’의 번역어로 등장했습니다. 불교계에서 '종교'를 사용한 예가 있어 불교 용어를 채용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라는 단어는 예전에는 그다지 잘 사용된 표현은 아닙니다. 불교에서 '종교'는 특정 종파의 종지(宗旨, 핵심 가르침)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불교 이외의 영역에서 쓸 수 없는 말이었던 거죠.
 
일본에서 religion의 번역어로 '종교'가 한 번에 선택된 것은 아닙니다. 19세기 후반에 다른 경쟁어들이 있었습니다. '법문(法門)', '종법(宗法)', '종지(宗旨)', '종문(宗門)' 등입니다. 1880년대 후반쯤에 저런 경쟁어들이 사라지고 '종교'가 대표어로 자리 잡습니다. 일본에서 '종교'라는 말로 religion의 번역어가 선택된 저간의 사정에 대해서는 다음의 책들이 참고가 될 것입니다. 국내에서 이런 맥락을 조명한 연구도 있습니다(박광수, 2016).
이미지 출처: 알라딘

그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하면, 메이지 정부의 정책적 입장(국민교화 맥락 + 국가신도 정립), 지식인들의 철학적 선호(+기독교 모델 선호), 다소 낯설지만* 한자 문화권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라는 점 등이 겹치면서 대표 번역어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종교’라는 조어는 일본에서도 일반적으로 사용된 표현은 아니었습니다. 불교계에서 용례가 있었습니다만.
** ‘종교’를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 수식-피수식 한자어의 결합으로 보면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곧 조선, 중국 등지로 그 말이 퍼져 나갔습니다. 조선에서는 1883년부터 '종교'라는 말이 쓰인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당시 지식인들이 '종교'라는 말을 religion을 떠올리면서 쓴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한자어 그대로 'best teaching(최고의 가르침)'으로 봤습니다(심형준, 2022). 이런 이해 방식은 지금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으뜸이 되는 근본적인 가르침'으로 종교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https://kcms.kmu.ac.kr/em/5ab451833c895

한국에 '종교'라는 말이 많이 쓰이게 된 것은 을사늑약 전후의 일로 보입니다. 신문 등에서 사용 빈도가 1905년에 높아집니다. 그 전에는 religion을 '교(敎)'나 '도(道)'로 번역했습니다. 외국어-조선어 사전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전에서 '종교'가 religion의 번역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11년부터 인데, 본격적으로 'religion=종교'라고 쓴 것은 1914년에 확인됩니다.
심형준(2022)의 표6

1911년 게일의 『한영자뎐』(2판)의 '종교' 항목을 보면, religion이 쓰이고 있지만, 약간 예상을 벗어납니다.
게일(1911), 『한영자뎐』 [한국어의 근대와 이중어사전 -영인편 6권]

'종교'를 'The national religion'으로 옮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를 best teaching으로 읽는 방식을 따른 번역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나라의 근본 가르침'이라는 의미로 '국교'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었습니다.
 
  • religion의 어원론

우리가 사용하는 '종교(宗敎)'라는 말의 원출처인 'religion'은 라틴어 religio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없습니다. 그런데 religio가 어디에서 온 말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종교학자 조너선 스미스는 “religion, religions, religious”(1998)에서 religare와 relegere 기원설을 검토하면서 religion의 “어원론은 불문명하다”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저명한 종교학자(1938-2017). 난해한 글쓰기로 유명하나 통찰력과 학문적 열정은 높이 평가 받고 있다. 꼴초로 유명하다. 출처: https://chicagomaroon.com/25666/grey-city/jonathan-z-smith-dean-of-college-university-of-chicago/

그러나 마치 정설처럼 이 말의 어원을 보통 religare(묶다) 혹은 relegere(다시 읽다)에서 찾습니다. 예를 들면, 구글에서 보여주는 어원 설명 결과가 그렇습니다.
구글 'religion etymology' 검색 결과

이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는 한 '어원 사전'을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religion’, Online Etymology Dictionary(https://www.etymonline.com/word/religion)
 
religion (n.) 1200년경, religioun은 “수도 서원monastic vows에 얽매인 삶의 상태” 또는 “신성한 힘에 대한 믿음과 그것에 대한 숭배와 그런 존재를 기쁘게 하려는 소망을 보여주는 활동 혹은 행동”을 뜻했다. 이 말은 11세기 앵글로 프랑스 말 religiun과 고대 프랑스어 religion, relegion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경건, 헌신, 그리고 종교적 공동체”를 의미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라틴어 religionem(주격 형태 religio)에서 유래했다. 그것은 “성스러운 것에 대한 경의, 신에 대한 숭배; 성실성, 옳음에 대한 감각, 도덕적 의무; 신에 대한 두려움; 예배식, 종교적 의식; (어떤) 종교, (어떤) 신앙, 예배의 (어떤) 형식, 숭배의식cult; 신성함, 거룩함”을 의미했다. 후기 고대(5세기)의 라틴어에서는 “수도적 삶”을 뜻했다.

이 행동의 명사형은 키케로의 경우 (독서나 사색에서) “다시 살펴 보다”라는 뜻의 relegere에서 파생되었다고 보았다(re는 ‘다시’, legere는 ‘읽다’). 그러나 후기 고대의 문인들(세르비우스, 락탄티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사이에서 유명한 어원론과 많은 근대 문인들의 해석은 religio를, “의무를 부과하다” 혹은 “인간과 신들 사이를 묶는다”는 개념을 매개로 “빨리 묶는다”를 뜻한다고 하는 religare와 연결짓는다. 그 경우에 ‘re-’는 강조하는 의미일 것이다. 또 다른 가능한 기원은 negligens의 반댓말인 “조심스러운”이라는 의미의 religiens이다.

영어에서 “신적 존재(들)에 대한 예배에서의 특별한 신앙 체계”라는 의미는 1300년에 이르러 나타난다. “보이지 않는 더 높은 신들 중의 신을 위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여겨지는) 삶의 방식에 대한 인식과 헌신”이라는 의미는 1530년대부터 나타난다.

 religio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wikipedia ‘religion’ 항목에서 볼 수 있습니다.

Religiō 
고전 고대에서 religiō는 광범위하게 성실성, 옳음의 감각, 도덕적 의무 혹은 어떤 것이든지 그것에 대한 의무를 의미했다. 고대와 중세 세계에서 어원학적인 라틴어 뿌리인 religiō는 세속적 맥락에서 숭배 의식에서의 개인적 미덕으로 이해되었다. 결코 교리, 실천 또는 지식의 실질적 원천으로서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religiō는 가족, 이웃, 통치자, 심지어 신에 대한 어떤 것이든지 그것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의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신과 관계된 맥락에서가 아니라 주저, 주의, 불안, 두려움, 그리고 속박되는, 금지되는, 거리끼게 되는 느낌과 같은 일반적인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 religiō를 가장 자주 사용했다. 이 용어는 또한 scrupulus ("매우 정확하게"를 의미함)와 같은 다른 용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일부 로마의 작가들은 superstitio* (너무 많은 두려움이나 불안 또는 수치심을 의미함)라는 용어를 때때로 religiō와 관련시켰다. 1200년대 즈음 religiō가 religion으로 영어에 들어왔을 때, 그것은 "수도원의 서원에 묶인 삶" 또는 수도원 공동체라는 의미를 가졌다.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과 분리된다는 종교의 구분된 개념은 1500년대 이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종교의 개념은 1500년대에 교회의 영역과 행정 당국의 영역을 구별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다. "유럽의 주권 국가 체제를 향한 첫 걸음"으로 평가를 받는 아우크스부르크 평화 조약에서 그러한 예를 볼 수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포로가 된 군인이 포획자에게 맹세하는 것에 대해 논의할 때 "맹세의 의무"라는 의미로 religiō를 사용했다. 로마의 박물학자인 대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는 코끼리가 태양과 달을 숭배한다는 점에서 religiō를 코끼리에게 사용했다. 키케로는 cultum deorum(신에 대한 숭배)과 관련된 것으로 religiō를 사용했다.(각주는 생략)
(원문은 여기로)
* 영어 superstition(현재 의미는 '미신')이 이 말에서 나왔습니다.

religio 이전은 불분명하지만, religio 이후의 의미론 전개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란 없이 명확하게 이해되고 있습니다.
Online Etymology Dictionary의 'religion' 항목에 실린 정리된 그림을 번역한 것

religio의 어원에 대한 설명들은 형태적 유사성과 함께 당시 religio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여 상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과거에 어떤 말에서 유래한 것인지, 사람들의 생각대로 re+(어떤 단어)로 만들어진 것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물증이 명확히 있는 게 아니라 공화정 말기의 지식인들이 관련 썰을 푼 내용이 남아 있는데, 거기서도 '그럴 것 같다'는 것이지 그런 연상을 뒷받침할 만한 기록물을 제시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로마 시대 때 사용된 용례를 보면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규칙을 잘 준수하는 활동'이나 '뭔가 꺼림찍하고 두려움을 일으키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신적 존재의 보호'를 요청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술-종교적 실천이 religio의 의미에 담겨 있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관념과 실천은 인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의례 규정을 다시 살핀다' 혹은 '경전을 읽는다'는 것(키케로)이나 '신과 인간을 묶는다'는 의미(락탄티우스 등)는 2차적인 숙고의 산물로 느껴집니다. 사후 연결의 전형적인 오해 방식에 따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들에게 익숙한 버전을 과거에 덧씌운 것 같습니다.

'종교 개념사 이야기'는 종교 개념의 한계를 넘어서는 출발점

문화적 개념(사람들이 익숙하게 공유하는 관념)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가 상당히 많이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religio에서 religion까지도 의미의 초점이 바뀌었습니다. 의례적 실천에서 초자연적 존재(신)에 대한 믿음으로 말입니다.

서구 세계가 팽창(대항해 시대와 제국주의 시대)을 거치며 자신들에게 익숙한 종교의 그림(기독교)을 세계 곳곳으로 확산시켰습니다. 유일신에 대한 믿음만 종교로 치다가 어떤 영적 존재에 대한 의례를 수행한다면 종교로 치는 일들이 벌어졌고, 주변부 주로 식민지를 겪은 나라들은 열심히 그 기준에 맞춰서 자신들의 '종교'를 찾거나 만들어 냈습니다.

사람들이 믿는 신이 뭔지 열심히 정리를 하고, 경전 같은 텍스트가 없으면 또 열심히 만드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속의 신이나 민속신앙의 신은 그저 '상정된 존재'이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억에 따라서 이런 존재라고 했다가 저런 존재라고 하는 등, 그냥 신이라 불릴 수 있으면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그걸 '종교'라는 그림에 끼워 맞추기 위해서 '신'을 더 실체화하고 중요하게 만듭니다.
신을 논리적으로 사유하면서 신론이 우리의 기본적인 신에 대한 상상을 초월해 버렸습니다. 종교적 교리의 신은 서구에서 이렇게 철학적 논쟁을 통해 초논리적 사유의 결과로 정당화되어야 했습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신을 말하는 게 아니라 담론 속에서 그럴 듯한 신이 만들어진 길이었습니다. 출처: https://www.etoland.co.kr/plugin/mobile/board.php?bo_table=etohumor01&wr_id=1913675

종교에서 신을 중시하는 것은 서구인의 편견일 뿐입니다. 신은 구색 맞추기로 상상된 존재일 경우가 일상의 종교 현장에서는 많거든요. 가령 무당은 신을 이야기하고 중시하기도 하지만, 무당에게 굿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신이 누구건 복이나 잘 내려주면 된다는 인식을 보여줍니다. 그저 '굽여 살펴주세요'면 되는 일입니다. 그 이상의 신적 존재에 대한 사유는 없습니다. 

이런 경향은 기성 종교의 신자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신을 강조하는 종교의 일상적인 교육 중의 하나가 '신을 도구로 여기는 태도' 등 종교 교리에 맞추어 사람들이 신을 생각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축복, 가호를 항상 구합니다. 

종교라는 이미지는 현실 세계에서 늘 교리, 이야기, 선언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사람들의 종교적 실천에서는 '축복을 받아 한 주 악--실제로는 불운이나 재액--에서 보호 받는', 일종의 주술적 방어막을 치는 행동이 두드러집니다. 신은 '초자연적 힘이 있어, 내가 헌신--재화 봉헌--한 만큼 나에게 복을 주어야 한다'는 계산 속에서 하나의 기계적 도구로 전락하곤 합니다. (이런 게 나빠서 말하는 게 결코 아닙니다. '종교'라는 개념의 효과가 그렇다는 겁니다).

종교 단체나 종교인이 자신들의 행위, 믿음 등을 근사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만든 이야기에 근거해서 종교라는 개념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지금도 종교라는 말이 사유되고 있습니다. 어느 한 신종교 단체에서 '종교'를 '으뜸되는 교육'이라고 풀면서 종교세일즈를 하고 있더군요. '종교'는 번역어이기 때문에 '으뜸 가르침'으로 풀어서는 안 되지만,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맥락에서는 그런 읽기가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긴 했습니다.

'종교'도 하나의 전략적 도구가 될 수 있고, 그렇게 사용될 때는 필요에 부합한 내용의 개념 규정을 부각하기 마련입니다. 개념은 그렇게 변화하는 것이죠. 애초의 의미는 지워지고 당대에 필요한 목적에 맞게 입맛대로 창조적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보여지는 것'과 연결만 되면 됩니다.

이런 흥미로운 사례가 많습니다. 전에 신년의례를 말하며 언급했던 '크리스마스'나 '할로윈 데이', '만우절'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애초 중요한 특성은 시간의 마디(신년의례)에서 새로운 시간의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모종의 주술적 의식을 수행하는 날이지만, 후대에 다양한 '해석' 특히 지배적인 종교적 관념에 순응시키는 해석이 가해져서 지금의 모습(성탄절, 코스튬 축제, 거짓말 하는 날)으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개념, 관습에 대한 주요 이미지를 그려내는 말의 외피를 한 꺼풀 벗겨보면, 관련된 인간의 활동이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종교 활동은 '두려운, 불안한, 꺼림찍한 느낌'과 관련이 되고, 그럴 때 '초자연적 존재의 보호'를 추구하며, 사회적 규칙(의례적 규칙을 포함)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며, '잘 지키도록' 강제하는 것들입니다.

종교문화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종교'라는 개념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사고 틀에 갇히게 하는 것인지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그 틀을 넘어서야 인간의 종교적 특성에 (특정 종교인의 시각이나 과학자의 반종교적) 편견 없이 마주할 수 있습니다.
 
 
더 읽을 거리

  • 박광수, 「근대 일본의 ‘종교’ 개념과 종교의 도구화: 일제시대의 종교정책과 신종교지형을 중심으로」, 『신종교연구』 34, 2016, 207-234.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Jonathan Z. Smith, 1998, “Religion, Religions, Religious”, Critical Terms for Religious Studies, ed. by Mark C. Taylor, Chicago: Chicago Univ. Press, 269-284.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최화선, 「로마 공화정 말기의 ‘종교 religio’와 ‘미신 superstitio’개념」, 『서양고전학연구』 17, 2001, 133-154.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논문 초록(본래 영문초록인 것을 번역)

기원전 44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생각되는 키케로의 De Divinatione(점술에 관하여)는 후기 로마 공화국의 점술 관행에 대한 비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키케로는 점술을 religio[렐리기오]가 아니라 superstitio[수페르스티티오]에 속한다고 비판했다. De Divinatione(점술에 관하여)에서 점술이 종교에서 제외된 이유를 이해하려면 로마 공화국에서 religio와 superstitio의 의미를 추적할 필요가 있다.벤베니스트(E. Benveniste)의 어원 분석에 따르면, religo는 omina(징조)와 관련된 어떤 꼼꼼함과 관련된 느낌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벤베니스트는 religio가 점술과 관련이 있는 단어라고 제안했다. 그것은 신에 대한 숭배(cultus deorum)뿐만 아니라 어떤 점을 치는 방법을 통해 신의 뜻을 아는 실천을 의미했다. superstitio는 점술, 특히 예언 및 신통력(clairvoyance)*과 관련된 특정 현상을 지정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superstitio의 의미에 포함되었던 예언이나 예지라는 개념은 로마인들에게 매우 생소한 것이었다. 로마인의 관점에서 점술의 작용은 미래에 대한 생생하고 구체적인 예측이 아니라 수행하려는 행동이 신의 승인을 받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만 국한되어야 했다. 따라서 로마인들은 항상 다른 형태의 점을 이상하고 낯선 것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며 경멸했고, superstitio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De Divinatione(점술에 관하여)에서 명백하게 키케로의 점에 대한 비판은 주로 외국의 점술 관행에 대한 것이다. 제2권에서 비판을 받는 점술 행위의 목록은 거의 로마 이외의 외국 점술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와 '타자', '우리의 종교'와 '그들의 미신'이라는 이분법을 의심해야 할지 모른다. 키케로는 로마에서 유래하지 않은 점이 너무 많고 전통적인 로마 종교 관습을 침해했기 때문에 점을 비판했을지도 모른다. 이 맥락에서 religio는 mos maiorum(조상들의 관습)이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로마 관습을 의미했다. 그리고 superstitio는 로마인의 사고방식에 낯설었던 종교적 관행이자 기묘하고 불길한 어떤 것을 뜻하는 종교적 관행을 의미했다.
 
* clairvoyance는 '죽은 사람과 의사 소통하고, 미래의 사건을 예측하거나, 실제로 일어나지 않거나 들은 바가 없는 일에 대해 아는 능력'을 말합니다. 투시력, 신통력 등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논문의 본문에서는 '투시력'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바 있습니다.

  • 최화선, 「고대 로마 사회의 주술과 종교 개념에 대한 소고」, 『서양고대사연구』 47, 2016, 179-207.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장석만, 「한국의 근대와 종교 개념, 그리고 연구 방향 모색을 위한 하나의 사례」, 『종교문화비평』 34, 2018, 15-50.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첨부파일 확인).

  • 심형준, 「1883~1910년 한국의 ‘종교 (宗敎)’ 용례 특이성: 한국 ‘종교’ 개념 형성사 재고」, 『아시아리뷰』 12(2), 2022, 207-238.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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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핫하다는 '챗GPT'에 크리스마스와 동지의 관계를 물어보았다. https://openai.com/ 나: 크리스마스가 동지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니? 챗봇: 크리스마스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12월 25일에 기념하는 축제일이며 종종 북반구에서 1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동지와 관련이 있다. 동지는 보통 12월 21일 또는 22일 경에 발생하며 태양이 하늘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도달하는 것, 즉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을 표시한다. 크리스마스 축제는 원래 기독교 이전의 동지 축제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는 종종 태양의 재생과 낮이 더 길어지는 시기의 복귀와 관련이 있다. 고대 로마인과 고대 켈트족을 포함한 많은 고대 문화에는 동지와 태양의 귀환을 중심으로 한 전통과 축제가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는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 및 종교적 영향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점에 유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동지가 축제일의 기원에 역할을 했을 수도 있지만, 크리스마스는 광범위한 종교적, 문화적 전통과 연관되어 현재 전 세계의 다양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기념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와 동지의 관계에 대해서 비교적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지 축제와 관련성을 '논증'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정보(동지 축제와 관련되지만 현재는 역사/문화/종교적 설명이 복잡하게 얽혀있다거나 복잡하게 변화했다)는 대체로 잘 이야기하고 있다. 인지진화적 설명은 관련 문서가 부족하기 때문에 활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디테일이 부족한 것도 한계라 할 수 있겠지만, 간단한 답변으로서는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챗GPT가 3문단으로 설명하는 것을 나는 A4 몇 페이지로 설명했던가. 대학 등에서 학생들에게 과제나 시험문제를 내줄 때 이제 안일하게 내면 AI가 답을 써주는 시대가 되어버린 듯하다. ─── ∞∞∞

'정신병', 스캡틱, 박한선

※ 이 글은 ' 얼룩소 '에 2023년 1월 28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본래 제목을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이 글은 Skeptic Korea의 " 정신의학의 오래된 과제, 과학적 치료와 처방 "에 관한 얼룩소글의 출처를 체크하고, 정신질환 치료의 현실에 대해 박한선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를 정래해 본 글입니다. ─── ∞∞∞ ─── 최근에 나온 글인 줄 알고 찾아봤더니 전에 나온 글이군요. 마침 어제(1/27) 정신과 의사 출신 인류학자 박한선 선생님을 통해서 관련 이야기를 듣고, 글쓴이부터 찾아 봤습니다. 다른 저자인 걸 보고, 정신의학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박선생님께서 정신병 진단과 치료에 '정신분석학'이 사용되고 있다고 하셔서 좀 어리둥절 했었습니다. 심리학계(실험심리가 중심이 된)에서는 배우지 않게 된 분야로 알고 있어서 의학 분야에서도 당연히 퇴출되었다고 지레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왜 인지 모르지만, 효과가 있다'는 면에서 정신과 치료가 이루어지는 현실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 '정신분석학'도 프로이트, 융 시절의 버전이 아니라 많이 업데이트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자세한 부분은 과문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제 박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도 떠올라 흥미롭게 이 스켑틱의 글을 읽다가 문득 출처가 궁금해서 찾아 보니, '한국 스켑틱'에는 14권(2018년)에 "정신의학은 과학이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로 실려있었습니다. (스켑틱에서 얼룩소에 올리는 글이 최근호에 실린 글이 아니라는 걸 이제사 깨달은 거죠) https://www.badabooks.co.kr/SKEPTIC_magazine/?idx=54 글은 14권의 68~83쪽에 실렸습니다. 이 글을 일부 발췌해서 재편집한 것이 위의 얼룩소에 실린 글이더군요.

미신과 종교라는 개념에 담긴 '너는 틀렸고, 내가 맞다'

※ 이 글은 ' 얼룩소 '에 2023년 1월 21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 ∞∞∞ ─── 미신이란 말을 많이 씁니다. 그게 무엇이냐 물어 본다면 우리는 어떤 행위들이나 관념을 이야기합니다. 뇌과학자 정재승 선생님도 미신 이야기를 하면서 '빨간색으로 이름 쓰는 행위가 불길하다는 미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정재승 편 미신이 어떤 것인가를 말할 때, 이렇게 미신에 속한 것들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시험 볼 때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 '시험 볼 때 포크를 선물한다' '손 없는 날 이사해야 한다' '밤에 손톱을 깎으면 안 된다' '귀신을 쫓기 위해서 팥죽을 먹는다' 그럼 '미신'은 어떤 것이냐 설명해 보라면, 아마 이런 말들을 늘어 놓게 될 겁니다. https://engoo.co.kr/blog/먼나라이웃나라-세계-각국의-다양한-미신들/ 표준국어대사전에 바로 그와 같이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미신' 항목 그런데 이런 개념은 일상에서는 그런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쓸 수 없는 설명입니다.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게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경제적 판단과 믿음에도 그런 사례를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관상은 과학이다', 'ABO 혈액형 성격론', '과시적 소비' 등등. 어떤 종교적 맥락에서 '이상한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미신'이란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종교와는 다른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위 국어사전의 개념 정의는 종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