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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이비 종교였다?!

일본에서 통일교 문제가 유력 정치인 암살 사건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덕분에 일부 언론에서 통일교에 대해 취재를 하며, 통일교의 나라 한국, 그리고 한국인의 컬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지인 연구자 분의 소개로 독일 ARD1 라디오 방송 기자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제가 이름이 있어서 한 것이기보단 전에 인터뷰 했던 연구자가 다리를 놓아줘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독일 방송사는 문외한이어서 ARD1이 어떤 곳인지 몰랐는데, 우리의 KBS와 비슷한 방송사더군요...)

인터뷰 하루 전에 질문지를 받아 보았는데, 통일교 관련된 게 반, 신천지가 1/10, 나머지는 은혜로 교회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인상적인 질문은 '한국에서 사이비 종교가 많이 만들어지는 이유'였습니다.

기자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든 생각은 제가 적합한 인터뷰 대상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기자가 고려한 스토리에 맞는 이야기를 늘어 놓을 타입이 아니거든요. 왜냐면 말이죠...

세상의 종교는 모두 사이비 종교였다

전에 '사이비'라는 말을 한 번 짚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미신, 사이비, 이단...옆차기?). '비슷한데 아니다'는 의미로 '사이비 종교'는 '반사회적인 나쁜 종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사이비 종교의 범죄를 다루는 한 연구에서 사이비 종교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기존 종교에서 떨어져 나온 경우가 많아서 겉으로는 그 모체인 종교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태 종교의 교리를 위반하고 신도들을 착취하며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형태로 재해석한 종교 아닌 종교로서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인 범죄집단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을 겁니다. 기존 종교를 바탕으로 새롭게 시도되는 종교운동을 불온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의를 시간 스케일을 확장해서 보면, 거의 모든 종교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잠깐 '기독교'라는 표현을 짚고 넘어가면요. 개신교계에서 개신교 만을 '기독교'로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과거 예수교라는 명칭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신봉하는 종교'라는 말 뜻('기독'은 '크라이스트'의 음차어)이므로 기독교는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등등을 모두 포괄하는 용어입니다(개신교계 신종교를 포함했다고 너무 불경하게 여기진 말아주세요.. 그들도 유일신 하느님과 예수를 믿는다고 이야기하니 정의상으로는 기독교에 포함이 됩니다, 학술적으로요. 오해 말아 주세요).

개신교는 가톨릭에서 나왔고, 가톨릭은 유대교에서 나왔으며, 불교는 힌두교(베다 전통), 자이나교 등을 모태로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는 고대 근동의 신앙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고(수메르,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등), 힌두교와 자이나교도 그 이전의 종교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종교 형태에 대해서는 아직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기에 그 이상의 추적은 어렵습니다. 기록된 것만 가지고 볼 때, 기원전 3,000년 정도까지 소급하고 있습니다. 한편 고고학적 유물을 바탕으로는 과거에 10,000년 전 즈음 농업 혁명 이후 정주민의 대규모 집단 생활 과정에서 등장했을 거라 추정되었습니다.

최근에 와서는 괴베클리 테페와 같은 유적이 연구되면서, 그 이전에도 집단 신앙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는가, 농경 사회 이전 수렵 채집 사회에서도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 생활과 종교 활동이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은 10,0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네이버 포스트 https://post.naver.com/my.naver?memberNo=11880830

집단적 의식의 수준을 죽음 의례와 사후 세계 관념으로 좁히면, 그 시간은 더 아래로 내려가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나온 뉴욕타임스의 한 기사를 보면, 78,000년 전까지 소급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https://www.nytimes.com/2021/05/05/science/earliest-human-burial-africa.html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은 종교 영역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완전 새로운 종교운동은 지구상에 전무합니다. 다 이전에 사람들에게 익숙한 종교적 관념과 실천들을 이것저것 조합해서 사상, 교리, 의례를 구축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종교는 처음에 다 '아류'에서 시작했던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최초의 원시종교적 형태로부터 점차 발전한 형태로 묘사될 수 있으니 이 말은 그렇게 틀린 게 아닙니다.

(TMI: 최근 인지진화적 종교 연구 분야에서는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주로 뇌-에 의해 영향을 받는 종교적 관념과 행동이 '디폴트 값'에 가깝다고 보고 있으며, '원시종교'라는 것은 그렇게 볼 때 과거로부터 전승되는 것이기보다는 진화된 생존 전략의 문화화 버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공유하는 생물학적 특성에 영향을 받는 직관적인 종교적 관념과 행동을 말합니다. '원시'보다는 '기본 종교성'이라 말해야 적합한 것일지 모릅니다. 해당 분야에서는 종종 이를 '자연 종교'--이신론을 잉태한 18세기 버전과는 다릅니다--라고 칭합니다.)

종교인의 범죄를 바라보는 편향적 시각

'사이비 종교'나 '이단 종교'는 과거 한 집단의 사람들이 '하나의 종교'에 속한 사회에서 생각하던 관념입니다. 그것이 근대화 이후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다뤄지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만, 세속주의 원리를 채택하는 헌법을 가진 나라, 즉 '종교/사상의 자유'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종교 문제는 공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날라 다니는 스파게티(Flying Spaghetti Monster)를 믿든, 뱀을 믿든, 개를 믿든 인간의 자유일 테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종교가 사이비다'라는 판단을 사법적으로 내리는 게 불가능해집니다. 물론 역사상 그런 재판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판결문에 '이 종교는 사이비 종교다' 혹은 '이 종교는 사교다'라고 못 박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실제로는 종교인의 범죄를 판단하는 것이죠. 다만 1950년대 박태선의 전도관에 대해서 교리로 사람들을 기만했는지가 다뤄지긴 했습니다.

어쨌든 법적으로는 '범죄 사실'을 판단하는 것인데, 교리가 '사기다'라는 판단은 통상 논외가 됩니다. 왜냐면 기존의 종교 교리는 진실로 믿을 근거를 어떻게 확보하느냐 판단하는 데에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법정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모두가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던 사회에서는 그게 전제가 될 수 있습니다만, 근데 세속 사회에서 법정에서 그런 전제를 당연시하기는 어렵죠)

어쨌든 공공의 이익을 해하는 종교 활동을 '사이비 종교'라고 규정할 수 있다고 해 보죠(아마 대부분이 이 정도의 판단은 가능하다고 보실 겁니다). 개인 재산의 갈취, 성착취, 횡령, 배임, 폭행, 살인 등이 그러한 범죄 행위로 이해됩니다.

<한겨레>의 <스포트라이트> 리뷰 기사, 이미지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90298)

신부들의 아동 성범죄를 다룬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아실 겁니다. 이런 사건으로 가톨릭을 이단이나 사이비로 취급하지는 않지요. (물론 개신교계에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전문 종교인의 범죄 통계를 내 보면, 개신교 사제 > 불교 승려 > 가톨릭 신부 순일 겁니다. 오로지 규모로 예상한 것입니다. 실제 현황이 어떤지 궁금하긴 하네요. 관련 통계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런 통계는 있습니다. 범죄자의 종교가 무엇인지를 기준으로 본 거죠. 역시 개신교(국가 통계에도 '기독교'가 쓰이는군요 -_-;), 불교, 가톨릭 순입니다(2021년). (관련자료)

[cf. 최근에 개신교가 역전한 것이고, 과거 통계를 보면 범죄자 종교 중 가장 많았던 게 불교입니다. 통계적으로 가장 많은 수치는 '종교 미상'입니다. 종교를 응답한 사람 중 가장 많은 경우는 '종교 없음'입니다]

기성 종교인의 범죄, 당연히 많습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기 때문입니다. '사이비', '이단'이라고 불리는 종교들은, 최근에 논란이 된 종교단체들을 떠올려 보면 많아야 20만 내외, 그 보다 적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들의 범죄는 '종교의 사이비성'과 '이단성'으로 문제가 돌려집니다.

1950년대 문교부 주최 좌담회에서 종교학자들과 법학자들은 박태선(전도관 교주로 여겨지는 인물)이 '스스로를 신격화해서 대중을 현혹했다'고 '전도관은 사교다'라는 판단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참고: 1950년대 후반 ‘전도관’ 관련 소송에 관한 연구)

그런데 예수가 바로 그와 비슷한 죄목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지요.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 하여 대중을 현혹하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질 거라는 둥 사회 전복을 기도하는 자이니 십자가형에 처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유대 기득권 층의 판단이었습니다.

사이비의 판단은 정치-사회적 판단입니다. 힘 있는 종교는 '개인의 일탈'로 문제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힘 없는 종교는 '사교', '사이비', '이단'의 낙인을 받아야 합니다. 객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힘의 논리에 의한 판단이죠. 편견과 과장된 공포에 이끌리는 감정적 판단입니다.

따라서 종교 현상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보려는 연구자들에게 '사이비 종교 연구'는 대체로 불가능합니다. 이런 접근은 가능합니다. 사회적으로 '사이비 종교' 판단의 경향성이나 변화에 대한 연구 같은 경우는 충분히 사회과학적인 연구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종교가 사이비 종교인 이유'와 같은 식의 연구나 '사이비 종교 때려잡기 위해 법과 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식의 연구는 정당화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바하의 종교문제연구소를 운영하는 박웅재 목사가 학계에 있지 않은 이유를 짐작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TMI로 서울대에 '종교문제연구소'가 있습니다만, 이단 연구소가 아닙니다. '종교가 일으키는 문제를 연구하는 기관'이라는 의미가 이나라 '종교라는 주제를 다루는 연구소'라는 의미에서 쓴 명칭인데,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긴 합니다.

불온한 종교단체의 판단과 정치권력

사이비, 이단 판단이 편견의 산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신종교들은 이런 편견에 희생되지 않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정치세력과 결탁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한국에서도 그랬고,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그랬습니다. 통일교는 그 점에서 큰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신종교 단체들에게 '성공적인 모델'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자체가 세계적 종교가 되는 데에 로마의 정치권력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로마의 공식 종교로 부상하면서 그 큰 세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종교세력의 정치권력과의 결탁은 종교 단체 성장을 위한 하나의 테크트리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기성 종교들과 정치권력의 결탁은 대체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교황과 국가의 수장이 공식적으로 종교행사를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개신교 목사들의 종교 행사에 정치인이 참여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신흥 종교 단체나 무속적 종교인과 정치인의 공식적 행사는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치는 대중의 일상적 감정과 편견마저도 '계산'하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니 자연히 그럴 것입니다.

강자의 진실은 '끝까지 살아남은 자'라고 하죠.

사이비 종교나 이단 종교를 벗어나는 것도 '끝까지 살아남은 종교'가 누립니다.

cf. 새로운 종교 단체는 '불온성' 이슈를 해소하기 위해서 다양한 전략을 취합니다. 정치세력과 결탁 뿐 아니라 사회공헌 활동도 활발하게 합니다. 의료 선교와 교육 선교는 한국에서 개신교가 개척한 영역이기도 하죠. 한국의 주요 신흥종교도 이런 활동들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또 유명인과의 교류(뭐 상을 주고 사진 찍기 같은)에도 힘을 씁니다. '정상성 인식'을 얻기 위한 힘겨운 인정투쟁이죠.

그런데 이건 종교의 독특한 문법이 아닙니다. 집단이나 조직의 생리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종교만이 특별한 것은 아니죠. 종교의 특별함은 집단이 공유하는 현실 인식에서 벗어날 때 집단 린치가 극단적으로 가해진 대표적인 영역이라는 점일 겁니다. 인간적 현상으로서는 종교만의 독특성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노파심의 사족>
전문 종교인의 범죄에 대해 사법적 판단이 불가하다는 시각이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종교 단체를 옹호하려는 의도의 글이 아닙니다. '사이비 종교'라는 판단이 갖는 편향성을 짚으려 한 것입니다. 전문 종교인의 범죄를 그냥 범죄만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문 종교인의 범죄를 그 종교 집단 자체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이용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라는 점을 잘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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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켑틱 편집자의 눈에 띄어서, 〈스켑틱〉34호에 "사이비 종교, 그 문제적 성격"이란 글을 기고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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