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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신발을 신는 동안 거짓말은 세상의 반 바퀴를 여행할 수 있다, 누가 한 말인가┃오귀인 사례 (6)

진실이 신발을 신는 동안 거짓은 세상의 반 바퀴를 여행할 수 있다.

(A lie can travel halfway around the world while the truth Is putting on its shoes.)

이 말은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했다고 알려진 말이다. 이 명언을 검색해 보면 어김없이 출처를 그렇게 밝히고 있다. 국내에서도 외국에서도 마찬가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출처: 명언웹(http://www.monfac.com/mq/page.php?sm=quote&qidx=1001)

출처: https://www.halcyongallery.com/exhibitions/15-fake-news-ernesto-canovas/ 

'가짜뉴스'(fake news) 주제의 그림 전시회를 소개하는 웹페이지에서 '가짜 정보'에 대한 명언을 오귀인한 '잘못된 정보'를 게시하고 있다.

이 명언은 표현이 다소 다른 버전들도 있다.

진실이 부츠를 신기 전에 거짓은 세상 반 바퀴를 여행할 수 있다.
A lie can travel halfway around the world before the truth can get its boots on. 

진실이 신발을 신는 동안 거짓은 지구를 여행할 수 있다.
A lie travels around the globe while the truth is putting on its shoes.

마트 트웨인이 했다고 하는 이 명언은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트웨인이 저 말을 1919년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위의 두 번째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1910년에 죽었다. 물론 생전에 한 이야기를 기억해서 적었다고 하면 될 일일 수도 있지만, 저 명언의 출처 찾기는 제법 성공적이니 우리가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이것도 '오귀인' 사례라는 것을.

Quote Investigator에서 이 명언의 출처를 조사한 바 있다(조사자는 보니 테일러-블레이크(Bonnie Taylor-Blake)).* 비슷한 표현을 1700년대부터 최근까지 추적하고 있다.

* "A Lie Can Travel Halfway Around the World While the Truth Is Putting On Its Shoes" 

그 내용을 옮겨 보면..(일부 생략한 것도 있음)

─── ∞∞∞ ───

우리에게 『걸러버 여행기』로 익숙한 조너선 스위프트가 비슷한 표현을 1710년에 사용한 바 있다.

게다가, 가장 사악한 작가에게 독자가 있는 것처럼 가장 위대한 거짓말쟁이에게도 그의 신자(Believers)가 있다. 그리고 만일 거짓말이 한 시간 동안만이라도 믿어진다면 그 거짓말은 그 역할을 다 할 것이고, 그리고 더 이상 그 거짓말이 필요 없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거짓은 날아가고 진실은 절뚝거리며 그 뒤를 따라온다. 그래서 사람들이 속은 걸 깨닫게 될 때는 너무 늦다. 농담은 끝났고 이야기는 이미 효과를 발휘했다.*

* The Examiner November 2-November 9, 1710: Vol. 1, Iss. 15, p. 2, col. 1(Article by Jonathan Swift). 

1787년에도 비슷한 표현이 확인된다. 토마스 프랭클린의 설교집에 실렸다.

거짓은 마치 바람의 날개를 타고 날아가 그 이야기를 땅 구석구석으로 전할 것이다. 한편 진실은 뒤처지는데, 그녀의 발걸음은 확신에 차 있지만 느리고 엄숙하며, 그녀는 적을 추격하고 추월할 만큼 활력도 활동도 없다.*

* Thomas Francklin, 1787, "Sermon XI: On Vigilance," Sermons on Various Subjects, and Preached on Several Occasions, Vol. 3, London: T. Cadell, p. 233. 

1794년 The Confessions of James Baptiste Couteau에도 거짓의 빠른 전파에 대한 표현이 등장한다.

입으로 하는 비방은 느리고 약하며 제한적이지만 거기에 종이 날개를 주면 새처럼 구름을 가르고 지방에서 지방으로, 왕국에서 왕국으로 날아가서 부담 없이 유통되고, 그 하나의 팜플렛은, 시인 알렉산더 포프가 연애편지에 대해 말했듯이,"인더스에서 극지방까지 거짓말을 퍼뜨릴 수 있다."*다리를 저는 진실은 날개 달린 그 적수의 진행을 막기에는 너무 느리게 절뚝거리며 뒤쫓는다.**

* 이에 대해서는 쿠토Couteau가 포프의 표현을 오해했다고 한다. 포프는 연애편지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인더스에서 극지방까지 한숨을 퍼지게 하라."(And waft a sigh from Indus to the Pole)라고 썼다. 

** 1794, The Confessions of James Baptiste Couteau: Citizen of France, Vol. 1, Translated from French to English by Robert Jephson, London: J. Debrett, Piccadilly, p. 23. 

1808년에는 보스턴의 매사추세츠 신문의 한 칼럼(“Thoughts”라는 제목)에 스위프트의 것과 같은 표현이 쓰였다고 한다.

어떤 이가 “거짓은 날아가고 진실은 절뚝거리며 그 뒤를 따라 온다.” 라고 말한다. 거짓이 때때로 한 시간 동안만 믿어진다면 그것은 그 목적을 달성할 것이며, 더 이상 거짓이 필요 없게 된다.*

* Anonymous, 1808, "Thoughts," The Times, No. 6, Boston, p. 23, col. 3. (GenealogyBank)

이것은 스위프트의 글을 인용한 것에 가깝다.

1820년에는 '부츠'가 언급되는 버전을 볼 수 있다.

대중의 마음은 허위 진술로 인해 이 사건에 너무 흥분했다. 조사를 통해 이러한 것들이 실질적으로 수정되었지만, 그 수정의 영향은 거짓의 피해에는 미치지 못한다. "거짓이 메인 주에서 조지아 주까지 날아 갈 동안 진실은 부츠를 신고 있기 때문이다."*

* 1820, The Portland Gazette, (Untitled article about the case of Lieut. Hobart), Portland, Maine, p. 2, col. 5. (GenealogyBank)

1821년, 1831년 사례는 1820년 표현의 인용이다. 1834년 버전도 1820년의 이형인데, 거짓말이 아니라 '오류'error가 등장한다.

...진실이 오류를 쫓기 위해 부츠를 신는 동안 오류는 전 세계의 반을 휩쓸 것이다.*

* 1834, The New-England Magazine, Vol. 6,  Boston: J. T. Buckingham, p. 331. 

1835년 버전에서는 '여행'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우리는 "거짓말이 수 리그*를 여행할 때, 진실은 자신의 부츠를 신고 있다!"라고 심각하게 듣는다.**

* league는 여기에서 거리 단위로 1 league = 3 mile로 약 5km 정도이다(약4.8-5.6km). 

** 1835, A Review of the Lady Superior’s Reply to “Six Months in a Convent”: Being a Vindication of Miss Reed, Boston: William Peirce and Webster & Southard, p. 8. 

1840년 버전은 '진실과 거짓의 경주'가 토머스 제퍼슨의 말이었다고 한다.

당신의 대의가 가진 선(善)에 너무 의지하지 말아라. 제퍼슨이 말한 것처럼 진실이 부츠를 신고 있을 때, 거짓말은 전국을 두루 여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 1840, Extra Globe, Whig Tactics, Washington, D.C.: Blair and Rives, p. 315, col. 2. 

1844년 버전은 버지니아 사람 존 랜돌프John Randolph가 한 말이었다고 한다.

버지니아의 저명한 존 랜돌프*는 “진실이 부츠를 신는 동안 거짓말은 메인 주에서 조지아 주로 이동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 John Randolph of Virginia, 18-19세기 활동한 미국 버지니아의 대농장주이자 정치인. John Randolph of Roanoke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농장이 버지니아 주 샬롯 카운티의 론노크Roanoke에 있었다. 

** 1844, The Millennial Harbinger, Letters from S. Y. H. to A. C., No. 11, p. 188, Virginia: A Campbell, Bethany. 

1846년 버전은 이를 중국 속담이라고 하였다.

중국 속담에 이르기를, "진실이 자신의 부츠를 신는 동안 오류는 지구 반을 여행할 것이다."*

* 1846, Brownson’s Quarterly Review, Vol. 3, Article IV, Boston: American Periodicals Series II, p. 96. 

1855년 버전에서는 '옛 속담'으로 표현되었다.

진실이 세계를 일주하기를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끌기 위해 급행열차를 빌려야 한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거짓말을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것은 날아갈 것이다. 그것은 깃털처럼 가볍고, 숨결은 그것을 운반할 것이다. 옛 속담에 '진실이 부츠를 신는 동안 거짓말은 세상을 돌아다닐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 1855, Sermons delivered in Exeter Hall, Strand, during the enlargement of New Park Street Chapel, Southmark, London: Alabaster & Passmore, p. 130. 

1881년 버전에서는 '거짓말'이 부츠를 신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거짓말은 일주일 전에 7-리그짜리 부츠를 신고 있었고, 여기 진실은 졸린 눈을 비비고 게으른 추격을 준비하고 있다.*

* 1881, The Christian Union, Vol. 23, Iss 17, New York: Brooklyn Publishing Company, p. 396, col. 1. 

1919년에 '마크 트웨인'이 이 명언의 발화자로 지목되기 시작했다.

마크 트웨인은 진실이 부츠를 신는 동안 거짓은 전 세계를 날아다닐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말을 반박할 수가 없다.*

* 1919, Standard Player Monthly, Vol. 4, No. 2, New York: Standard Pneumatic Action Company, p. 9.

1921년 버전은 역시 마크 트웨인이 한 말이라고 하며 '신발 끈'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거짓말은 진실이 부츠의 끈을 묶는 동안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올 수 있다" - 마크 트웨인*

* 1921 February 24, Denver Post, Nubbins by Burris Jenkins (Editor of The Kansas City Post), p. 22, Col. 1. 

1924년에는 '부츠' 대신에 '신발'(shoes)이 등장했다.

공직에서 한 사람에 대한 꽤 괜찮은 거짓말은 진실이 신발 끈을 매고 있는 동안 전 세계를 돌 것이다. —Alamosa (Colo.) Journal.*

* 1924 August 28, West Bend Journal, p. 1, col. 4, Iowa: West Bend.

1948년 버전에서는 '승마용 바지(breeches)'가 등장했다.

거짓말은 진실이 승마용 바지를 입을 시간이 있기 전에 지구 반 바퀴를 질주할 것이다.*

* Cordell Hull, 1948, The Memoirs of Cordell Hull. New York: Macmillan, p. 220.

1981년에는 '윈스턴 처칠'이 이 명언의 발화자로 지목되었다.

처칠이 말했듯이, '거짓말은 진실이 신발을 신기 전에 세계의 반바퀴를 돈다.*

* Francis X. Clines, 1981, "Lefever Says Critics Twisted His Record," New York Times, p. 14, col. 1, New York.

1987년 버전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형태를 보여준다.

진실이 신발을 신고 있는 동안 거짓말은 세상 반 바퀴를 여행할 수 있다. - 마크 트웨인*

* Mark Twain, 1987, The Wit & Wisdom of Mark Twain. 1st ed., ed. by Alex Ayres, New York: Harper & Row, p. 139.

2000년 버전은 판타지 작가 테리 프래쳇(Terry Pratchett)의 책 The Truth에 실려 있다.

사람들은 쉽게 혼동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에서 법정에서 수세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말합니다. 분명히 그들은 진실이 부츠를 신기 전에 거짓말이 전 세계를 떠돌 수 있다고 말합니다. 대단히 불쾌한 짧은 문구군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 Terry Pratchett, 2000, The Truth : a Novel of Discworld, 1st ed., New York: HarperCollins, p. 159.

2009년 버전은 처칠에게 오귀인 된 명언들을 소개하면서 해당 문장을 소개한다.

2. 진실이 속바지를 입을 기회를 갖기도 전에 거짓은 세상을 반바퀴 돈다.*

* Richard M. Langworth, "Quotations Winston Churchill Never Said: A Few Additions", Richard M. Langworth (Website), June 19, 2009.

Quote Investigator의 결론은 '이 격언이 300년 이상 진화하고 있'으며 추적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버전은 1710년 조너선 스위프트의 '나는 거짓과 저는 진실'이다. 이 명언을 만든 이가 마크 트웨인이나 윈스턴 처칠이라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 ───

흥미로운 오귀인 사례다. 명언이 유명인에게 오귀인되는 경우는 많이 볼 수 있는데, 해당 명언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추적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데 이 '진실과 거짓'에 대한 명언은 그 변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례인 것 같다. QI에 의해서 300년 간의 변화가 추적되었다.

아마 그 이전부터 진실보다 거짓말의 파급 효과가 크다는 걸 사람들은 알고 있었고, 어떤 식으로든 표현해 왔을 것이다. 기록된 자료에서 찾아 봤을 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1700년대까지였던 것일 게다.

19세기 초반까지 '나는(fly) 거짓'과 '느리게 저는 진실'의 대비가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부츠'가 등장해서 '저는 사람의 느림'이 아니라 '부츠를 신는 느림'이 진실과 연결되었다. 곧이어서 '거짓'의 확산 범위는 세계의 반에 이르게 된다. 다분히 해당 시대의 문화적 유행과 익숙함에 영향을 받은 변화로 보인다.

20세기 초반에 '신발 끈'이 등장하고 곧 '부츠'에서 '신발'로의 대체가 일어났다(여전히 '부츠'라는 표현이 살아남아 있긴 하지만). 이 대체가 일어난 시기는 '신발'이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어 전세계로 확산되는 시기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다.

300년 간의 이 명언의 변화를 보면, 원초적 특성(거짓말은 빠르게 확산, 진실은 느리게 확산)이 유지되는 반면에 빠름과 느림을 표현하는 이미지는 시대에 따라서 다소 변화해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원초적 특성은 인간이 가진 생물학적 특성, 특히 뇌의 인지 방식과 관련될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의 인지적 편향(부정 편향, 확증 편향 등) 때문에 이런 정보 전달 과정에서의 편차가 나타나는 것 같다. 잘 확산되는 거짓 정보는 대체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자극적인' 정보다. 뒷담화나 가십 같이 우리 귀를 간지럽히는 정보들이다.

시대에 따라서 변화하는 이미지는 그때 그때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이해하기 쉬운' 유행하는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명언의 진화'에서도 인간의 진화된 능력과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는 문화가 착종되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 같다.

─── § ───

거짓말과 진실의 확산 속도의 차이는 누구나 체감하는 것이다.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거짓과 재미없거나 복잡하거나 한 진실 사이에 기본적으로 정보 습득과 전파의 동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는 에너지가 적게 들지만 후자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

실제로 그 편차를 확인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데,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인터넷 매체 등을 활용해서 그것을 좀 더 명확하게 시각화 할 수 있게 되었다. 가령 아래의 트윗이 참고가 된다.

트위터에서 가짜 뉴스는 진짜 뉴스보다 더 빠르고 더 멀리 퍼진다. 또한 사실을 퍼뜨리는 사람들에 비해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사람들은 "트위터를 처음 접하고 팔로워가 적고 팔로잉 수도 활동량도 적었다".

다음 논문도 참고가 된다.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ap9559

위 논문의 메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래프.

'거짓'의 힘을 느낄 수 있다.


※ 이 글은 2022년 8월 25일 작성된 글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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