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뇌 자극으로 우리의 의사 결정 속도와 유연성을 바꿀 수 있을까?┃신경종교학을 위한 논문 읽기(3)

"Mild Brain Stimulation Alters Decision-Making Speed and Flexibility" 논문에 따르면, 이 연구는 우리가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할 때 뇌가 어떻게 의사 결정을 내리는지, 그리고 비침습적인 뇌 자극 방법으로 이 과정을 바꿀 수 있는지 탐구합니다.


뇌 자극으로 우리의 의사 결정 속도와 유연성을 바꿀 수 있을까?


상상해보세요. 커피를 마시면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는 동시에, 뒤에서는 TV 소리도 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고 할 때가 많죠. 하지만 뇌는 한 번에 여러 가지를 완벽하게 처리하기 어렵습니다. 보통은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다른 일은 나중에 처리하는 식으로 '순서'를 정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더 느려지거나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우리 뇌의 어떤 부분이 이런 '멀티태스킹' 상황에서 작업 순서를 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오랫동안 연구해 왔습니다. 특히 배외측 전전두엽 피질(dlPFC)이라는 뇌 영역이 주목받았는데, 이 부분은 우리가 계획을 세우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조절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전 연구들은 dlPFC가 컴퓨터가 시키는 대로, 즉 외부에서 주어진 강제적인 순서에 따라 작업을 조절할 때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멀티태스킹을 할 때는 대부분 자유롭게 어떤 일을 먼저 할지 스스로 결정합니다. 이번 마틴 루터 할레-비텐베르크 대학교(Martin Luther University Halle-Wittenberg)의 새로운 연구는 바로 이 '자유로운 결정' 상황에서 dlPFC의 역할을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뇌 자극, 어떻게 하는 걸까요?

연구진은 경두개 직류 자극(tDCS, Transcranial Direct Current Stimulation)이라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이 방법은 두피에 전극을 붙여서 아주 약한 전류를 뇌 특정 부위에 흘려보내는 것으로, 마치 뇌의 특정 스위치를 켜거나 끄는 것처럼 뇌 활동을 활성화시키거나 억제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은 몸에 칼을 대지 않는 비침습적인 방식이라 심리학 연구에서 널리 쓰입니다.

연구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자극을 사용했습니다.

  • 양극성 자극(Anodal stimulation): 이 자극은 뇌 활동을 활성화시키고 신경 세포를 더 흥분성으로 만듭니다. 쉽게 말해, 뇌의 해당 부위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돕습니다.
  • 음극성 자극(Cathodal stimulation): 이 자극은 뇌 활동을 억제하고 신경 세포의 흥분성을 낮춥니다. 뇌의 해당 부위가 잠시 덜 활성화되도록 방해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 연구는 이중 맹검(double-blind)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즉, 참가자도, 그리고 심지어 연구자도 어떤 종류의 자극이 사용되었는지 (혹은 아무 자극도 없었는지) 알지 못한 채 실험이 진행되어 결과의 객관성을 높였습니다. 총 40명의 참가자가 시각 작업과 청각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며 어떤 작업을 먼저 해결할지 자유롭게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알아냈을까요?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양극성 자극을 가했을 때:

    • 참가자들은 의사 결정을 더 빠르게 내렸습니다.
    • 특히, 이전 작업 순서와 다른 새로운 순서로 작업을 바꿀 때(순서 전환), 위약(자극 없음)을 가했을 때보다 반응 시간이 현저히 짧아졌습니다. 이것은 뇌의 dlPFC가 활성화되면 스스로 작업을 전환하는 데 드는 노력이 줄어들어 더 효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하지만 이전 순서를 그대로 반복하거나, 애초에 순서가 고정된 작업에서는 반응 시간에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는 dlPFC가 자발적으로 새로운 순서를 선택하고 실행하는 과정에만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줍니다.
  • 음극성 자극을 가했을 때:

    • 참가자들은 이전 선택에 고착하는 경향이 증가했습니다.
    • 구체적으로, 위약 자극을 가했을 때보다 작업 순서를 바꾸려는 비율(전환율)이 유의미하게 감소했습니다. 이는 dlPFC의 활동을 억제하면, 이전 순서를 반복하려는 경향(순서 반복 편향)이 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뇌가 새로운 결정을 내리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껴,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약 100밀리초(0.1초) 정도로 아주 미묘하지만, 실험 심리학에서는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로 간주됩니다.

이 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통찰은 무엇일까요?

이 연구는 dlPFC가 우리가 스스로 어떤 작업을 먼저 할지 자유롭게 결정하는 과정에 직접적이고 인과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합니다. dlPFC가 활성화되면 인지적 유연성이 높아지고, 억제되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죠. 특히,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주어졌을 때, 뇌의 dlPFC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작업 순서에 대한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실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양극성 자극이 반응 속도에, 음극성 자극이 전환율에 주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흥미로운데, 이는 tDCS 자극이 자발적인 의사 결정 과정 중에서도 '결정'하는 단계와 '실행'하는 단계에 각각 다르게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이 연구는 tDCS가 인지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연구진은 시중에 판매되는 tDCS 장치들이 '창의력 향상'이나 '집중력 증대'와 같은 광범위한 약속을 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입니다. 그 효과가 매우 미묘하고, 개인이나 상황 등 많은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tDCS는 뇌의 특정 부위를 아주 정밀하게 자극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dlPFC 주변 다른 뇌 영역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연구는 우리 뇌의 dlPFC가 여러 작업을 동시에 처리할 때 우리가 스스로 의사 결정을 내리고 유연하게 작업을 전환하는 능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이 뇌 활동을 외부에서 조절함으로써 우리의 인지적 유연성에 미묘하지만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논문의 자세한 요약

  • 연구 목적 및 핵심 개념

    • 이 연구의 주된 목적은 배외측 전전두엽 피질(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dlPFC)이 다중 작업(dual-task, DT) 상황에서 자발적인 작업 순서 조정 과정에 인과적으로 관여하는지 여부를 탐구하는 것이었습니다.
    • 이전 연구들은 dlPFC가 외부적으로 정해진 작업 순서 조정에 중요하다고 밝혔지만, 이번 연구는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작업 순서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에서 dlPFC의 역할을 조사했습니다.
  • 연구 방법: 경두개 직류 자극(tDCS)

    • tDCS는 두피에 부착된 전극을 통해 매우 약한 전류를 흘려보내 특정 뇌 영역의 활동을 활성화하거나 억제하는 비침습적인 방법입니다.
    • 연구자들은 계획 및 의사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dlPFC에 자극을 가했습니다.
    • 양극성(Anodal) 자극: 양극 전극을 사용하여 뇌 활동을 향상하고 신경 세포의 흥분성을 증가시킵니다. 일반적으로 인지 능력 향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 음극성(Cathodal) 자극: 음극 전극을 사용하여 뇌 활동을 억제하고 신경 세포의 흥분성을 감소시킵니다. 일반적으로 인지 능력 저하와 관련이 있습니다.
    • 이 연구는 이중 맹검(double-blind) 방식으로 진행되어, 참가자나 연구자 모두 어떤 종류의 자극이 사용되었는지 또는 전류가 흐르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 참가자들은 시각 및 청각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며 어떤 작업을 먼저 해결할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 총 40명의 참가자가 두 가지 실험(양극성 자극 실험 1, 음극성 자극 실험 2)에 참여했습니다.
  • 주요 결과

    • 실험 1: 양극성(Anodal) 자극
      • 양극성 자극은 의사 결정을 더 빠르게 이끌었습니다.
      • 구체적으로, 참가자들이 이전 작업 순서에서 의도적으로 작업 순서를 전환(order-switch)할 때 반응 시간(RT)이 위약(sham) 자극에 비해 유의미하게 짧아졌습니다. (Task 1에서 1120ms에서 1057ms로, Task 2에서 1220ms에서 1125ms로 단축).
      • 그러나 고정된 순서(fixed-order) 작업이나 이전 순서를 반복(order-repetition)하는 작업에서는 RT에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는 자발적인 순서 조정 과정에만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합니다.
      • 양극성 자극은 작업 순서 전환율(order-switch rates, 즉 전환하려는 경향)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 실험 2: 음극성(Cathodal) 자극
      • 음극성 자극은 참가자들이 이전 선택에 고착하는 경향을 증가시켰습니다.
      • 구체적으로, 위약 자극에 비해 작업 순서 전환율이 유의미하게 감소했습니다 (38%에서 32%로 감소). 이는 순서 반복 편향(order-repetition bias)이 증가했음을 의미하며, dlPFC의 활동을 방해함으로써 작업 순서 전환이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 음극성 자극은 RT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 인지적 영향 및 통찰

    • 이러한 변화는 약 100밀리초(ms)로 미묘하지만, 실험 심리학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로 간주됩니다.
    • 연구 결과는 dlPFC가 자발적인 작업 순서 조정 과정에 인과적으로 관여하며,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수행할 때 인지적 유연성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 특히, dlPFC는 시간적으로 겹치는 두 작업의 스케줄링에 필요한 작업 순서 정보를 의도적으로 업데이트하고 구현하는 데 관여합니다.
    • 양극성 tDCS는 신경 세포의 흥분성을 증가시켜 dlPFC의 효율적인 정보 처리를 촉진함으로써 의도적인 작업 순서 전환을 용이하게 합니다. 반면 음극성 tDCS는 dlPFC 활동을 비효율적으로 만들어 작업 순서 전환율을 감소시켰습니다.
    • 이번 연구는 dlPFC가 외부적으로 강제된 작업 순서 조정뿐만 아니라 스스로 조직화된 다중 작업 상황에서 자유 의지에 기반한 결정을 촉진하거나 억제함으로써 다중 작업 수행을 조절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양극성 자극이 RT에, 음극성 자극이 전환율에 주로 영향을 미친 것은 두 자극이 자발적인 순서 전환의 의사 결정 과정과 실행(구현) 과정 중 다른 하위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추측을 낳습니다.
  • 제한 사항 및 향후 연구

    • tDCS는 공간적 초점성이 낮아, dlPFC 주변 영역에 미치는 영향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향후 고해상도 tDCS(high-definition tDCS)와 같은 새로운 접근 방식이 더 나은 초점성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 외부 요인(예: 자극 순서)이 참가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 두 실험 간의 결과 패턴(RT 대 전환율)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표본 크기 부족 때문일 수 있으며, 향후 더 큰 표본이나 강한 자극 강도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 결론

    • 이 연구는 dlPFC가 자발적인 작업 순서 조정 과정에 인과적으로 관여한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하며, tDCS가 이러한 고차원적인 인지 과정에 미묘하지만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그러나 tDCS 장치가 상업적으로 판매되며 창의력이나 집중력 향상과 같은 광범위한 약속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며, 그 효과가 매우 미묘하고 많은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고 강조합니다.

NotebookLM 활용하여 작성.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위로가 없는 '차가운 종교학', Science of Religion을 생각하며

※이 글은 얼룩소 글(23.7.13)을 옮겨온 것입니다. ━━━━━━ ♠ ━━━━━━ 종교라는 주제를 다루려면 '위로'가 필요하다? 이 말을 저는 곳곳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그 이야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정재승 박사가 총괄자문 및 프리젠터로 참여한 다큐 시리즈 '뇌로 보는 인간'의 마지막 '종교' 편에 제가 자문으로 참여하여 아주 짧은 시간 출연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시청률이 높았던 편이 아니라서 사람들로부터 별다른 반응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우연히 EBS 다큐를 보던 친구가 '야, 너 나왔더라...잠깐 ㅎㅎ', 이런 반응을 보인 예가 있었을 뿐입니다. 함께 자문에 참여한 구형찬 박사(인지종교학)가 종교학자로서는 메인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뇌로 보는 인간' - 종교 편의 한 장면┃저는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몇 년이 지나서 그때 나왔던 미디어 비평 기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미디어스 기사 캡쳐 해당 다큐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다음에 이런 논평을 내 놓았습니다. 미디어스 관련 기사 '위로가 없다'는 비판 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종교라는 주제를 다룰 때 사람들은 그런 것을 기대하곤 합니다. '종교의 본질', '참된 의미' 같은 것을 발견하고, 뭔가 진리의 말씀이나 인생을 통찰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를 기대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종교학도 존재합니다. '현대인의 종교는 병들었다'는 진단을 내리며 '고대인의 지혜'를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거나 모든 종교에 담겨있는 가장 고귀한 가르침(가령 황금률 같은)은 모두 상통하고 그것이 인간이 향유해야 할 소박하지만 분명한 진리라고 이야기하는 예도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출처: Wikimedia Commons 종교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막스 뮐러는 '종교학으로의 초대(Introduction to the Science ...

"뇌 회로는 친숙한 것, 중요한 것과 단순한 배경을 식별합니다."(논문 정리)

흥미로운 신경과학 연구 소개를 봤습니다. 친숙한 것과 중요한 것을 먼저 식별하는 뇌 경로에 관한 연구입니다. '신경종교학'에 참고가 되는 논문일 것으로 판단되어,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  *  * Brain Circuit Identifies What’s Familiar, Important, or Just Background┃Neuroscience News.com 요약 : 과학자들은 기억과 감정을 통합하여 감각 정보를 빠르게 평가하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뇌 회로를 발견했습니다. 내측후각피질(entorhinal cortex)과 해마(hippocampus) 사이의 이 직접 피드백 루프를 통해 뇌는 중요한 광경과 소리를 거의 즉시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알려진 더 느린 경로와 달리, 이 회로는 관련 자극과 배경 소음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PTSD와 자폐증과 같은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 발견은 뇌가 정보를 걸러내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감각 및 기억 관련 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 ───  익숙한 것을 한눈에 알아보는 뇌 회로, 해마의 비밀 우리는 왜 친숙한 얼굴이나 물건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요? 반대로 처음 보는 것은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곤 합니다. 이런 능력 뒤에는 우리의 기억 이 큰 역할을 합니다. 뇌의 해마(hippocampus)라는 부분이 과거의 기억을 보관하고 있다가, 현재 들어오는 감각 정보와 비교하여 이것이 익숙한지 새로운지 판단하도록 돕는 것이죠. 예를 들어, 해마는 “이건 예전에 봤던 거야” 혹은 “처음 보는 거네”라는 신호를 뇌의 다른 부분에 보내 우리의 인식을 조절합니다. 이 덕분에 우리는 중요한 새로운 정보 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미 아는 것은 배경 소음처럼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해마는 특히 대뇌피질의 한 부분인 내후각 피질 (entorhinal cortex)과 긴밀히 소통합니다. 내후각 피질은 오감에...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은 많다?│시간과 종교적 본능

※ 이 글은 '얼룩소'에 2023년 1월 2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부제를 약간 수정) ─── ∞∞∞ ─── 1년의 시작점은 많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은 동지, 설, 정월대보름, 입춘 등입니다. 전에 이야기한 16세기 후반 프랑스의 신년 기념일들처럼( 참고 ) 같은 나라 안에서도 여러 신년 기념일이 있는 경우는 특이한 현상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원래 지역적인 단일성은 있었을 겁니다. 특정 지역에서는 1월 1일이다, 이 동네는 음력 설이다, 이 동네는 입춘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이게 어떤 계기에 통합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지역적으로 통일성을 가진 집단들이 묶여서 더 큰 집단으로 통합되면서 시간, 의례 등을 통합하는 과정이 뒤따르게 됩니다. 종교단체 수준에서도 진행이 되지만 국가 수준에서도 진행이 됩니다. 이 과정은 국가의 흥망성쇠, 종교단체의 흥망성쇠 등 집단 구속력의 변화에 따라서 부침을 겪으며 반복·중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에서는 16세기에 신년 기념일을 단일화하려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러한 노력이 19세기말 20세기에 시도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수준에서 한 해의 시작일은 그렇게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있지만, 의례적으로 기념하는 첫 날은 쉽게 변화하지 않습니다. 이를 문화적 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선조들이 해왔던 대로 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나타남). 여러 신년 기념일은 그런 통합의 힘에도 어떤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과거의 전승이 살아남아 그 흔적을 남긴 덕분입니다. 다만 해당 기념일을 현재에 활용하는 의미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현재적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면 사라질 운명을 일 겁니다. 그럴 경우 '고유한 문화를 지키자'는 운동이 표출될 수도 있습니다. 집단 정체성과 관련된 전통으로 선택되지 못하면 잊혀지는 것이고요. 동지 우리에게는 팥죽 먹는 날 정도의 의미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 날도 과거에는 새해가 시작되는 날로 기념되었습니다. 그런 동지 축제가 신년 축제인 사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