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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주도하는 추모 방식의 기괴함│추모가 아닌 위령제라고 봐야

정부가 10.29 핼러윈 참사* 이후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합동 분향소도 정부 주도로 만들면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지침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 고려대 국문과 신지영 교수는 11월 3일 TBS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이태원 참사'보다 '10.29 참사'로 쓰는 게 적절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 실상이야 '책임 회피'라는 것은 명확한 것인데, 일부 사람들은 어떤 종교적 배경을 의심한다.

사람들은 '살(煞)'에 관한 민속신앙을 떠올리고 있다.

이마의 검은 칠이나 위패가 없는 것도 한 '법사'가 배후에서 지도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고 있다.

합동 분향소는 이제까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적은 없었다.

세월호 합동 분향소와 비교해 보면 명백하다. 사진과 위패를 같이 놓고 있다. 위패에는 이름이 적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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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공부인으로서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분향(焚香), 말 그대로는 '향을 불태운다'는 의미이다. 분향을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초혼(招魂)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한국만의 관습은 아니다. 

가령 기독교 경전을 보면, 민 16: 35, 왕하 12:3, 대하 13:11, 렘 1:16, 호 11:2, 눅 1:9-10 등에서 신적 존재에게 분향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야훼가 아닌 다른 신에게 분향하는 것을 문제 삼는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향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물리적 성질(연기가 위로 올라가며 사라진다)을 사람들이 영적 존재와 연결시켰던 것인데, 이에 대한 직관적 상상은 지역적-문화적 범위를 넘어서 인류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초혼과 강림

우리에게 익숙한 관념은 분향을 해서 혼령을 부른다고 해서 그 부르는 곳으로 혼령이 올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해당 혼령을 특정할 수 있는 요소가 필요한데, 이름이나 사진 혹은 유품이 될 수 있다.

이런 사고방식도 한국적인 것 만은 아니다. 우리는 통상 민간신앙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말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행위에는 죽은 자와 관련된 무엇을 매개로 사용하기 마련이다. 죽은 장소, 지닌 물건, 좋아했던 것, 이름, 사진 등등.

죽은 자와 산 자는 실상 만날 수 없다. 사람들은 그 만남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그 상상은 유사와 인접의 원리에 따라서 이루어진다.

개별 영적 존재는 그 개별성을 드러낼 수 있는 매개물이 있을 때 떠올리기 쉽다. 그게 인간이 혼령을 떠올리는 전형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리고 그 존재와의 의사소통은 산 사람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하기 마련이다.

이별의 한을 달래기 위해 밥을 차려 내는 것도 그런 연유다.

죽은 영혼과 소통하려는 인간의 염원은 '그'가 누구인지 안다면 '그'를 식별할 수 있는 것으로 그 혼령이 산 자들과 '함께'하는 것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민속종교적 관념으로 다시 표현하자면, 그 혼령을 부르기 위해서는 그 혼령을 특정할 '표지'가 있어야 한다. 그의 옷, 신발, 장신구 즉 접촉하고 있던 것이나 그를 나타내는 사진이나 위패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영혼이 사람들이 부르는 그곳으로 올 수 있다.

사람들의 통상의 종교적 관념 속에서 죽은 영혼과 관계 맺는 방식은 그러한 문법을 따르기 마련이다.


개별성이 사라진 자리에서 '추모'는 가능한가?

추모제라는 게 엄밀하게 개별적으로 식별 가능한 혼령들에게 바치는 사회적 제사를 배타적으로 뜻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그 개념에 비추어 보면 개체 식별성은 의례 대상의 기본적 특성이다. 추모한다는 것은 '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그 말의 의미에 입각해서 보면, 추모제는 죽은 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다.

보통 사회적 명성을 가진 사람이나 사회에 큰 기여를 한 사람들을 '기억하며, 대접한다'는 의미에서 추모제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재난의 희생자에 대해서도 추모제를 말할 수 있는데, 그 경우는 '그 희생을 사회적으로 기억하겠다'는 함의를 갖는다.

통상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우리가 알고 있는 개별적인 존재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들은 우리가 일일이 '호명'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추모제의 대상은 유품의 기억을 공유하는 집단 내에서는 유품으로 대상의 개별성을 연상할 수 있지만 사적 기억이 없다면 누구나 식별할 수 있는 이름(이 쓰인 것)이나 사진이 선호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망자의 개별성이 사라지고 하나의 집단으로 묶인다면 어떨까?

사회적 제사로서 죽은 영혼을 집단적으로 위무하는 의례가 있다. 조선조의 여제나 불교의 수륙재 같은 게 있다. 전쟁이나 전염병, 각종 재해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나서 민심이 흉흉할 때 바로 그런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그 영적 존재들이 산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해서 가뭄이 들고, 홍수가 나고, 역병이 돈다고 여겨져서, 산 사람들이 '원귀가 되어 구천을 떠돌지 말고, 우리가 이렇게 잘 대접할 터이니, 그만 저승으로 돌아가시게나'라는 의미에서 하는 제사다. 원귀의 저주를 막기 위한 방어적 의례라고 할 수 있다.

그 존재들은 개별성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장례도 제대로 치러지지 않은(예나 지금이나 장례가 제대로 치러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망자에게 미안한 일이라 여긴다) 그런 존재들이다.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이름도 모르고, 옷 같은 물건도 없다. 위패를 개별적으로 만들래야 만들 수 없다. 이런 존재들의 원한은 달래야 하고(그래야 사람들이 '원귀 때문이야', '제대로 제사도 못 지낸 탓이야'라고 불안해 하지 않으니), 개별적으로 혼령을 불러올 수도 없으니 집단적으로 호명하고 그렇게 '집단 명칭'으로 위패를 만들어 제사의 대상으로 삼는다.

요즘에는 이런 제사를 종종 '위령제'라고 한다. 그 말 뜻은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다(대상이 꼭 집단적일 필요는 없다. 다만 관례적으로 집단적 대상에 많이 쓰인다). 어떤 죽은 영혼을 위로할까? 실험 동물 위령제, 이런 거 들어 본 적 있을 것이다. 원혼에 대한 제사라고 이해를 하면 좋을 것 같다.

'추모 위령제'라는 표현도 쓰여서 일부 용례들은 추모제와 위령제를 구분하지 않는 경향도 있지만, 사회적 제사의 목적과 기능의 측면에서 볼 때, 추모제와 위령제는 충분히 구분된다.


추모제와 위령제

양자의 엄밀한 구분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양자의 차이를 우리가 민감하게 고려해서 사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념상, 그리고 종교-사회적 기능 상에서는 충분히 구분될 수 있다.

추모제는 종교적 성격이 약하고 사회적 기념과 기억을 위한 의례 성격이 두드러진다. 위령제는 종교적 성격이 강하다. 원혼을 달랜다는 것은 원혼의 저주가 산 사람들에게 닿지 않게 막으려는 의도를 갖는 행위다. 종교적 목적이 뚜렷하다.

추모제에 비해서 위령제에 전문종교인(사제-목사, 승려, 무당 등)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심리)적 측면에서 보면, 다수의 죽음이 자아내는 집단적 불안과 공포를 달래는 의미를 갖는다. 실험 동물 위령제로 놓고 생각해 보면, 차마 못할 짓을 했다는 죄책감(거기에서 기인하는 불안감 등)을 '씻어내는' 기대를 가지고 행해진다.

또 비교되는 차이가 있다. 추모는 모든 죽음을 포괄한다. 비명횡사든 자연사든 그 죽은 자를 추모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말이다(사회적=집단적). 반면에 위령은 '좋지 않은 죽음'만을 대상으로 한다. 재난, 재해, 전염병, 전쟁 등에 의한 죽음을 다룬다.

추모는 기억과 기념을 위해서, 위령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분(원한)을 달래기 위해서 행해진다.


─── ∞ ───

'어쩔 수 없는 재난을 만나 재수 없게 네가 죽었구나. 이승의 한을 풀고 그곳에서나마 행복하게 잘 살아라.'

'너의 억울한 죽음을 잊지 않겠다. 미안하다. 너의 한을 풀어주겠다.'


10.29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에게 우리는 어떤 식으로 말을 걸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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