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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조암 , ' 寂照 ' 로 인도하는 곳┃답사 후기

2017년 6월 초 답사 두 번째 후기

적조암으로 오르는 길의 '적조암' 소개 팻말. "여기서부터 1km"가 포인트(1km는 거친 등산로) ⓒ steinsein

최종성 선생님(서울대 종교학과)께서 꼭 가보고 싶어하셨던 곳. 적조암은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이 피난을 와 49일 동안 기도했던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동학 관련 연구를 진행하시면서 최시형이 기도했다고 하는 이곳을 꼭 눈으로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이런 선생님의 관심과는 달리 역시 나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본사가 정암사인데, 박사과정 중에 그곳에 답사를 갔었던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저 멀리 산 중턱의 '수마노탑'을 보고서야 그곳이 전에 와 봤던 곳임을 알았다.

정암사의 수마노탑 ⓒ steinsein

최선생님의 감상과는 달리, 이곳에서 무슨 새로운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품으며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여기서부터 1km'라고 해서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태백산 답사를 왔던 곳 중에서 단연 힘든 코스였다. 산령각 답사도 힘들긴 했지만, 그나마 그곳은 등산로가 나쁘지 않았다. 적조암 가는 길은 입구 약간만 돌계단 같은 느낌의 정비된 등산로였지, 나머지는 거의 계곡물에 휩쓸려 내려 온 듯한 제법 굵직한 짱돌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그런 등산로였다. 

1km를 고생스럽게 올라서서 본 적조암의 풍경은 흉칙했다. 가건물과 건물을 올리려는 터 정도만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2017년 6월 4일, 적조암의 모습 ⓒ steinsein

2017년 6월 4일, 적조암의 모습 ⓒ steinsein

2017년 6월 4일, 적조암의 모습 ⓒ steinsein

2017년 6월 4일, 적조암의 모습 ⓒ steinsein

그곳은 버려진 곳이었다. 여기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하던 차 적조암 가건물 옆 공터에서 무언가 신기한 아니 신비한 느낌을 받았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있었고, 나무잎들이 부딪치면서 기분 좋은 바람나뭇소리가 났다. 풀벌레 소리, 산새 소리가 바람 소리와 함께 귀전을 울리고 있었다.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파랗고 뭉게 구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힘든 산행 그냥 빨리 해치워야지 하는 마음으로 일행을 앞서서 올라 선 곳에서 불현듯 혼자 바람과 하늘과 구름 그리고 나무와 산이 어우러진 곳에 서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답사에 오기 전 마음을 무겁게 하는 소식을 들었고, 나는 화가 나 있었다. 어리석게도 아내와 아이들과 크게 부딪쳤다. 분노의 꼰대질을 해 버리고 말았다. 그런 마음의 응어리를 지고 새벽같이 출발한 답사였다. 

답사는 즐거웠지만 분노조절장애의 미숙함 속에서 저지른 일들이 큰 짐으로 얹어져 있었다.

폐허의 공간 속에서 발견한 주변의 자연 풍경은 아무 생각도 마음에 남아있지 않게 했다. 한참을 그렇게 하늘, 산, 나무를 바라보았다. 소리를 빛을 향기를 빨아들이고 싶었다. 아니 거기에 빨려들어가 버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잠시 있다가 아래의 동영상을 찍었다. 그 느낌이 그대로 담기지는 않겠지만, 나중에라도 보고 떠올리고 싶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느껴 본 상쾌함이었다.

적조암은, 적조암을 품은 함백산은 내게 아무런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았다.

그곳은 그저 나를 비워주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잠시일지라도 벗어날 수 있었다. 생각 그 자체로부터도.

그 당시 모습. 촬영: 구형찬 ⓒ Koo


한참 그러고 있다가 구형찬 선생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여기와서 신비체험을 하지 못하면 그것도 이상할 꺼야'

'여기에서 49일 기도를 하면 깨닫지 않을 수 없겠는 걸'


장소 그 자체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가도 그 느낌을 얻기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

마침 마음이 번잡하였고, 산행으로 몸이 힘들었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아주 파랗고 아주 푸르른 자연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일 테니까 말이다. 단 한 번 뿐일 경험이었다.

오로지 회상 속에서만 순수한 그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테다.


이번에도 나의 답사는 무기대와 무관심 속에서 큰 수확을 거뒀다. '이야기 없음'의 수확.

아! 그렇다. 이곳이 '적조암'(寂照庵)이지.

폐허같은 '적조암'을 본 게 아니라 그곳 자체가 '적조'로 인도하는 곳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적조암은 보는 게 아닌 느끼는 곳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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