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광장, 중심이라는 경계

아래 글은 같은 제목으로 2017년 6월 30일에 ' 월간 종교인문학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 놓은 것이다.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까지 이어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를 계기로 '다양한 광장의 경험'을 종교학자의 시선으로 조명해 봤던 글이다. ─── ∞∞∞ ─── 광장은 도시의 한 복판에 있다. 그러나 광장이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나 ‘중심’으로 경험되는 것은 아니다. 광장의 경험에 대한 다양한 기억은 그곳을 오히려 불안한 ‘경계’의 자리로서 묘사하도록 한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지금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광장 이야기와 그 그늘에서 빛바랜 채 먼지를 뒤집어쓴 잘 기억되지 않는 혹은 기억될 수 없는 광장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고 싶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 공간의 경계성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지난해(2016년)부터 올 봄까지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광장은 촛불로 가득 채워졌다. 그 목소리는 결국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켰고, ‘새로운 한국 만들기’의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그리고 광장에서 터져 나왔던 ‘민주주의의 외침’이 더 각별하게 기억되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5.18과 6.10 사진출처: 5.18 기념재단 사진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 날들은 ‘국가 기념일’이 되었다. ‘무슨무슨 기념일’로 되어 있는 날에는 ‘3.15의거 기념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4.13), ‘4.19혁명 기념일’, ‘학생독립운동 기념일’(11.3)이 있다('국가기념일'은 그 외에도 '무슨무슨 날'을 포함한다). 광장을 ‘민주주의 성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 때 공대 선배조차도 학내 학생 운동의 메카인 광장을 '신성한 곳'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성스러움의 감각은 아주 현실적이었다. 이러한 성스럽다는 규정 자체가 이 공간이 무언가 '분리'를 발생시킬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 분리의

폭력적 ‘입문식’과 어른에 대한 상념들: 물어지지 않는 물음을 찾아서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180403/89428159/1 불안 과 분노, 그리고 ‘없는 물음’ 박사학위를 마치고 사회에 나왔다.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학위를 마치기까지 유예되었던 많은 것들의 만기가 도래했다. 달라진 게 없기 때문에 갚을 길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위로를 삼아 보지만, 인간의 도리, 사회인의 도리, 자식 된 도리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무수한 비교와 평가에서 쉬이 자유로워지지 않는다. 여전히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창작의 고통’을 핑계로 이야기하곤 하지만, 실상은 뿌리 깊은 불안 탓이 크다. 불혹이 코앞이다. 이립(而立)을 완수하지 못한 삶에서 불혹(不惑)은 언감생심이다. 20대부터 이어지고 있는 불안(不安)이 있을 뿐이다. 불안은 여유를 잠식하고, 쉬이 분노케 한다. 20년 가까이 쌓인 불안은 내게 분노조절장애를 선물했다. 그리고 열등감과 콤플렉스는 뒤틀릴 대로 뒤틀려 버렸다. 위의 꼰대를 욕하며 아래로 꼰대 짓을 일삼는다. 밖에서 혁신과 평등 그리고 자유를 이야기하면서 안에서는 압제와 폭력의 화신이 된다. 나는 ‘바른’ 혹은 ‘정상적인’ 어른으로 크지 못했다. 불혹이 눈앞이지만 이립조차 버거우니 말이다. 이런 자의식 탓에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종종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에 불을 지핀 이야기가 있었다. 소위 ‘요즘 아이들 문제’라는 내용으로 대학교 신입생들의 '폭력적 신고식’을 고발하는 기사들이다( 기사1 , 기사2 , 기사3 ).  그 신고식에는 폭음, 얼차려, 기타 가혹행위 등이 동반되었다. 분명 그러한 폭력적 신고식은 ‘나쁜’ 것이다. 신입생들에게 그러한 일을 시키는 선배들이 ‘나쁘다.’ 이러한 인식까지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뭔가 빠져있다. 중요한 질문이. 그 선배라는 친구들이 저런 짓을 왜,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제대로 묻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체 저런 짓을 어디서 배운

크리스마스는 타락한 적이 없다, 기독교의 덧칠이 있었을 뿐

크리스마스의 현대적 관습(크리스마스 트리, 캐럴, 선물,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등)은 기독교적인 게 아니다. 게다가 그 형성 시기도 비교적 최근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 크리스마스 트리와 산타클로스의 기원을 살펴보자.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트리의 경우 직접적으로 유럽 북부의 상록수 가지를 이용한 장식 관습—동지 축제 풍습—과 관련되어 있다. 기독교 이전에도 동지 축제 때 상록수를 사용한 예를 여럿 찾아 볼 수 있다. 서구인들은 주로 유럽과 연관된 지역의 사례들을 소개한다. 이집트에서는 동지의 태양신 라 숭배 의식 때에 녹색 종려 나뭇잎으로 집을 장식했다. 이집트인들은 겨울을 태양신이 아프거나 어디론가 떠나버린 때라고 여겼고, 동지 이후에는 다시 낮이 길어지니 라 신이 회복되어 돌아오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집트인들은 푸르른 종려 나뭇잎을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로마의 동지 축제인 ‘사투날리아’ 때 로마인들도 상록수로 집과 신전을 꾸몄다. 로마인들도 동지 이후로부터 생명이 움트는 풍요의 시기가 도래하게 된다고 여기며 이러한 상록수 장식을 했다고 한다. 북유럽에서는 고대 켈트족의 사제인 드루이드도 영원한 생명의 상징인 상록수 가지로 사원을 장식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이킹은 상록수를 태양신 발드르(Balder)의 특별한 식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 나오는 ‘겨우살이’와 관련이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직접적 전파 과정은 16~19세기에 걸쳐 독일에서 영국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전해져 뿌리내리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6세기 독일 개신교도들에 의해 가톨릭적인 크리스마스 풍경을 바꾸기 위해 트리와 촛불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영국에 전해진 것은 독일계 영국 왕실로부터였다. 영국 왕실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과 나무 주위에 선물을 놓는 풍습이 유행하고 점차 부유한 중산층에도 확산되었지만, 대중화의 결정적 장면은 빅토리아 여왕 가족 행사 보도를 꼽는다. 1848년 London Illustrated N

노이질러, '종교하는' 인간을 생각한다

'노이질러', '종교하는 인간'을 묻기 ‘노이질러’, 이건 대체 무슨 말인가? 이 말은 ‘religion’을 거꾸로 읽은 것이다. ‘noigiler’, 이렇게 쓰고 보니 재밌는 구석이 있다. ‘노이즈+소리질러’를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거꾸로'나 '반대로'는 사실 모호하다. 다만 관습적 맥락에서 '거꾸로'의 의미가 결정될 따름이다. 왜 굳이 거꾸로 읽기를 상상할까? 이런 시도를 해 보는 것은 종교 개념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어서다. 종교 개념의 한계는 또 뭔가? 이것은 종교를 둘러싼 혼란스러운 풍경 몇 가지만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종교란?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종교’라고 여기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실천하는 것을 종교 ‘따위’로 표현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종교인들이라면 선하고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종교인들이 심리적 오류에 빠져 있다고 믿는다.  저마다 사람들은 자기들 나름의 종교 이해를 참으로 여기며 종교를 판단한다. 이런 모습이 상식적 종교 이해로 종교를 이야기할 때 벌어지는 풍경이다. 종교라는 말은 위에서 말한 몇 가지 방식으로 종교와 관련된 현상을 재단하게 만든다.  이런 점이 한계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종교를 거꾸로 보겠다는 발상은 이런 관점의 전환을 ‘실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왔다. 물론 관점을 바꾸는데 왜 굳이 거꾸로 보려고 하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다.  오로지 이유는 하나, 그게 가장 재밌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보는 방식을 전복시키고 아주 낯선 관점으로 현상을 들여다보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 정말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보기는 안 좋은 점도 분명히 있다. 낯선 관점이기 때문에 소통이 어렵고, 익숙한 세계에서 문제없이 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 있

'종교의 기원', KAIST 인간의기원연구소 포럼에 다녀와서

어제 KAIST 인간의기원연구소 포럼에 다녀왔다. 구형찬 박사님의 '종교의 기원'이란 주제의 강연이 이루어졌다. 나는 지정질문자로 참여 했다. <휴먼 디자인>의 5장 "종교: 종교는 왜, 그리고 어떻게 진화했는가"의 내용을 1시간 반에 걸쳐서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인지종교학 입문' 강연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구성과 연출, 퍼포먼스가 돋보이는 강연이었다. 자연주의적 관점의 종교 이해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랬을 때 어떤 문제들이 설명되는지, 간단하면서도 요점을 잘 정리해서 보여주셨던 것 같다. '종교의 기원'을 내세웠지만, 인간의 종교적 행동/관념에 대한 진화인지적 관점의 설명이었기 때문에 이를 보충하는 의미에서 '종교적 행동의 기원'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의 질문은 '고인류의 매장 흔적'이 가장 오래된 인간의 종교적 행동의 증거일 것 같은데, 그런 것을 감안한 종교적 행동의 기원에 대한 나름의 시나리오가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호모 날레디는 과연 매장을 했는가로 요즘 논란이 뜨거운데(중론은 매장은 아니라는 쪽인 것 같다), 호모 사피엔스 사례로는 7만8천년 전, 네안데르탈인은 12만년 전 사례가 가장 오래된 것이다. 물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인간의 종교적 행동은 장례 행동인데, 그것은 현생 인류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건 명백해 보인다. 연계된 문제는 동물의 어떤 행동들을 의례적/종교적 행동으로 볼 수 있느냐, 볼 수 있다면 '인간의 종교적 행동의 기원'과 관련해서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것이 될 것 같다. 관련 사례를 다루는 책들도 있는 것 같다. 해당 동물행동학 연구를 '동물 행동에 대한 의인주의적 해석'이라고 쉽게 단정해서 무시할 게 아니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 답변이 길어지고('시신 처리 행동을 모두 종교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을까?'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