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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25의 게시물 표시

'신화적 역사'와 '역사적 신화', 역사와 신화의 비식별역

 "'신화적 역사'와 '역사적 신화'", 이 타이틀로 글을 냈었다. 2016년에. 필자의 2016년 논문 이 글은 박사학위 논문에서 다룬 사례들을 활용해서, " 승자의 역사와 신화적 역사 "의 논의를 확장해서 완성한 것이었다. 이 글에서 나는 '신화'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화'라는 게 '종교' 개념과 마찬가지로 역사-문화적 특수성을 지닌 것으로 사람들이 가진 어떤 일반성을 포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화 개념은 그리스-로마 신화를 전범으로 하는 인간화된 신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그리스-로마 신화만 하더라도 그냥 '신들의 이야기'로 포괄할 수 없다.  도시 건설 이야기, 영웅의 성장 이야기 등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 개념을 다른 문화권의 신비한 이야기에 적용할 때, 신화 개념 적용의 타당성을 묻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로마 신화가 '제대로 된 신화'이고 나머지 지역의 신화라고 불리는 것들은 아류라는 식의 평가를 내리기 마련이다. '한국 신화', 이 말은 '한국의 신화'를 말하는 것인데, 여기에 들어간다고 여겨지는 이야기에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제왕운기》 《동국이상국집》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규원사화》  등의 기록물 속 이야기, 민간전승, 무가 전승 등을 '민간 신화', '무속 신화' 등으로 부르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구분은 기록 형태에 따른 구분이고, 내용상 우주창생신화, 영웅신화, 문명기원신화, 건국신화 등등으로 분류된다(두백, ' 한국신화 '). 지금이야 이런 분류학이 정리되어 있지만 '신화' 개념이 우리에게 낯설던 개항기에는 우리에게 신화는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우리 안에서 신화를 발견하게...

승자의 역사와 신화적 역사

이 글은 과거 블로그(삭제됨)에서 2015년 4월 13일에 작성한 글이다. * * *   '승자의 역사'라는 말은 역사라는 것이 승자의 입맛에 맞게 왜곡되어 기록되었다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은 단순하게 '패자'를 쓰레기 취급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식민사관'이라는 것도 큰 틀에서 볼 때 이런 '승자의 역사'인데, 일본애덜이 우리보고 '멍청하고 덜 떨어져서 우리 발이나 핥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진 건 너네가 열등해서야'라는 결과론적 해석인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박정희 근대화론 또한 이러한 함정에 빠져있다. 지금의 풍요를 낳은 것은 근대화-산업화이고 그것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 일본과 박정희에 대해서 그렇게 '편향된 시각'으로 비판하면 안 돼. 그럼 여전히 기아선상에서 헐벗고 굶주려야겠어? 라는 식의 이야기. 이런 식의 루저에 대한 평가절하가 익숙하지만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반대 방향의 '승자 꾸미기'(승자에 대한 '뽀샵 역사')도 같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찌질이 루저'를 만드는 메커니즘의 정 반대의 작용이지만 기본적인 속성은 동일하다. '조작'. 루저, 그들은 사악하고, 원시인 수준으로 멍청하고 등등, 질 수밖에 없는, 그래서 '나쁘기'까지 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승자, 그들은 인류발전에 공헌하며, 영웅적인 행위를 통해서 공동체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고, 더욱이 심각한 위기의 순간에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고,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을 그들이 가진 비범한 능력으로 성취해 낸 반인반신의 존재로 그려진다. 선인과 악인의 대립은 신적 역사와 악마적 역사의 대립으로 확장된다. 인류사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모습이다. 도시, 왕, 국가의 등장 혹은 신의 인류에 대한 대규모적 역사함에 관한 '신화'들은 대체로 그러한 '승자의 역사...

적조암 , ' 寂照 ' 로 인도하는 곳┃답사 후기

2017년 6월 초 답사 두 번째 후기 적조암으로 오르는 길의 '적조암' 소개 팻말. "여기서부터 1km"가 포인트(1km는 거친 등산로) ⓒ steinsein 최종성 선생님(서울대 종교학과)께서 꼭 가보고 싶어하셨던 곳. 적조암은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이 피난을 와 49일 동안 기도했던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동학 관련 연구를 진행하시면서 최시형이 기도했다고 하는 이곳을 꼭 눈으로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이런 선생님의 관심과는 달리 역시 나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본사가 정암사인데, 박사과정 중에 그곳에 답사를 갔었던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저 멀리 산 중턱의 '수마노탑'을 보고서야 그곳이 전에 와 봤던 곳임을 알았다. 정암사의 수마노탑 ⓒ steinsein 최선생님의 감상과는 달리, 이곳에서 무슨 새로운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품으며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여기서부터 1km'라고 해서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태백산 답사를 왔던 곳 중에서 단연 힘든 코스였다. 산령각 답사도 힘들긴 했지만, 그나마 그곳은 등산로가 나쁘지 않았다. 적조암 가는 길은 입구 약간만 돌계단 같은 느낌의 정비된 등산로였지, 나머지는 거의 계곡물에 휩쓸려 내려 온 듯한 제법 굵직한 짱돌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그런 등산로였다.  1km를 고생스럽게 올라서서 본 적조암의 풍경은 흉칙했다. 가건물과 건물을 올리려는 터 정도만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2017년 6월 4일, 적조암의 모습 ⓒ steinsein 2017년 6월 4일, 적조암의 모습 ⓒ steinsein 2017년 6월 4일, 적조암의 모습 ⓒ steinsein 2017년 6월 4일, 적조암의 모습 ⓒ steinsein 그곳은 버려진 곳이었다. 여기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하던 차 적조암 가건물 옆 공터에서 무언가 신기한 아니 신비한 느낌을 받았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있었...

태백산, 산당, 서낭당 그리고 사람들┃답사 후기

[2017년 6월에 태백산 일대의 답사를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답사는 6월 3일부터 6월 4일까지. 후기 작성일 2017. 6. 7.] · · · 태백산에 다녀왔다. 천제단, https://www.khan.co.kr/local/Gangwon/article/202204281434001#c2b 난 답사를 싫어한다. 주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왜 가야 하나'에 적절한 답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학부 때는 '학술'을 가장한 MT같은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싶었는데, 대학원에 들어와서는 그마저도 관심이 시들해졌다. '학'은 사라지고 '술'을 위해서 가는 것이라면 또 굳이 갈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실제 답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답사에서 무언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박사수료 후부터 조금 달라졌다. 이제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재미가 있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역시 수준 높은 연구자들과 함께 가서 그런 것 같다. 혼자 갔다면 도저히 그곳의 이야기,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터다. ('자기 문제의식'이 명료화 되었다는 점도 중요한 것 같기는 하다) '산악신앙'은 상식적으로는 '원시신앙'으로 학술적으로는 자연신앙 내지는 마을신앙과 관련된 민속신앙으로 이야기된다. 고도의 신학적 이야기, 그래서 인생의 의미를 음미하는 따위의 것이 담겨있지 않다. 그래서 상당히 빈곤하게 이해된다. 그런데 이번에 태백산 답사를 가서, 거기에 '인간'을 들여다 보는 '어떤 창'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었다. 산은 '신성한 곳'이다 태백산 같이 높은 산, 주변 지역의 '중심'이 되는 산은 특히 그렇다. 그런 산들은 일단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위험'하다. 맹수로부터 목숨을 위협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