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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3의 게시물 표시

노이질러, '종교하는' 인간을 생각한다

'노이질러', '종교하는 인간'을 묻기 ‘노이질러’, 이건 대체 무슨 말인가? 이 말은 ‘religion’을 거꾸로 읽은 것이다. ‘noigiler’, 이렇게 쓰고 보니 재밌는 구석이 있다. ‘노이즈+소리질러’를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거꾸로'나 '반대로'는 사실 모호하다. 다만 관습적 맥락에서 '거꾸로'의 의미가 결정될 따름이다. 왜 굳이 거꾸로 읽기를 상상할까? 이런 시도를 해 보는 것은 종교 개념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어서다. 종교 개념의 한계는 또 뭔가? 이것은 종교를 둘러싼 혼란스러운 풍경 몇 가지만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종교란?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종교’라고 여기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실천하는 것을 종교 ‘따위’로 표현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종교인들이라면 선하고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종교인들이 심리적 오류에 빠져 있다고 믿는다.  저마다 사람들은 자기들 나름의 종교 이해를 참으로 여기며 종교를 판단한다. 이런 모습이 상식적 종교 이해로 종교를 이야기할 때 벌어지는 풍경이다. 종교라는 말은 위에서 말한 몇 가지 방식으로 종교와 관련된 현상을 재단하게 만든다.  이런 점이 한계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종교를 거꾸로 보겠다는 발상은 이런 관점의 전환을 ‘실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왔다. 물론 관점을 바꾸는데 왜 굳이 거꾸로 보려고 하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다.  오로지 이유는 하나, 그게 가장 재밌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보는 방식을 전복시키고 아주 낯선 관점으로 현상을 들여다보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 정말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보기는 안 좋은 점도 분명히 있다. 낯선 관점이기 때문에 소통이 어렵고, 익숙한 세계에서 문제없이 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 있

'종교의 기원', KAIST 인간의기원연구소 포럼에 다녀와서

어제 KAIST 인간의기원연구소 포럼에 다녀왔다. 구형찬 박사님의 '종교의 기원'이란 주제의 강연이 이루어졌다. 나는 지정질문자로 참여 했다. <휴먼 디자인>의 5장 "종교: 종교는 왜, 그리고 어떻게 진화했는가"의 내용을 1시간 반에 걸쳐서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인지종교학 입문' 강연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구성과 연출, 퍼포먼스가 돋보이는 강연이었다. 자연주의적 관점의 종교 이해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랬을 때 어떤 문제들이 설명되는지, 간단하면서도 요점을 잘 정리해서 보여주셨던 것 같다. '종교의 기원'을 내세웠지만, 인간의 종교적 행동/관념에 대한 진화인지적 관점의 설명이었기 때문에 이를 보충하는 의미에서 '종교적 행동의 기원'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의 질문은 '고인류의 매장 흔적'이 가장 오래된 인간의 종교적 행동의 증거일 것 같은데, 그런 것을 감안한 종교적 행동의 기원에 대한 나름의 시나리오가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호모 날레디는 과연 매장을 했는가로 요즘 논란이 뜨거운데(중론은 매장은 아니라는 쪽인 것 같다), 호모 사피엔스 사례로는 7만8천년 전, 네안데르탈인은 12만년 전 사례가 가장 오래된 것이다. 물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인간의 종교적 행동은 장례 행동인데, 그것은 현생 인류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건 명백해 보인다. 연계된 문제는 동물의 어떤 행동들을 의례적/종교적 행동으로 볼 수 있느냐, 볼 수 있다면 '인간의 종교적 행동의 기원'과 관련해서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것이 될 것 같다. 관련 사례를 다루는 책들도 있는 것 같다. 해당 동물행동학 연구를 '동물 행동에 대한 의인주의적 해석'이라고 쉽게 단정해서 무시할 게 아니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 답변이 길어지고('시신 처리 행동을 모두 종교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을까?'라는